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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창원(昌原) 황씨(黃氏) 옥곡(玉谷)   황씨(黃氏) 성은 중국 전욱(中國 顓頊)의 고양황제(高陽皇帝)의 증손(曾孫) 육종(陸終)이 황(黃)에 봉(封)해짐으로써 성(姓)을 황(黃)으로 하였다. 육종(陸終)의 후손인 황락(黃洛)이 신라(新羅) 유리왕(儒理王) 5년에 교지국(交祉國)으로 사신으로 가던 중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평해(平海)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황락은 갑고(甲古) 을고(乙古) 병고(丙古) 세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 갑고는 고구려 때에 기성군(箕城君)에 봉하여져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되었고, 둘째 아들 을고(乙古)는 백제 때에 장수군(長水君)에 봉하여져 장수황씨(長水黃氏)가 되었으며, 막내 아들 병고(丙古)는 신라(新羅) 유리왕(儒理王) 때에 창원백(昌原伯)에 봉하여져 창원황씨(昌原黃氏)가 되었다. 그 중에서 대종(大宗)은 토황(土黃)으로 불리워지는 시중공파(侍中公派) 충준(忠俊)과 당황(唐黃)으로 불리워지는 회산군파(檜山君派) 석기(石奇) 등이다. 시중공파(侍中公派)의 비조(鼻祖)는 고구려 충렬왕 때 판문하시중(判門下侍中) 황충준(黃忠俊)이다. 특히 이 파에서 황재(黃梓)ㆍ황인검(黃仁儉)ㆍ황인점(黃仁鮎)의 3부자가 유명하였다. 고려조에 판경조윤(判京兆尹)과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정토장군(征討將軍)을 지낸 황신(黃信)을 1세조(一世祖)로 한다. 2세손 거정(巨正)은 형조판서(刑曹判書)로 개국좌명이등훈(開國佐命二等勳)에 책록(策錄)되어 의원군(義原君)에 봉하여졌다. 3세손 효성(孝誠)은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현령(縣令)을 지냈다. 4세손 사윤(斯允)은 무과(武科) 평안병사(平安兵使)이고, 5세손 징(澄)은 성묘(成廟) 임자(壬子)에 진사(進士)로 고흥군수(高興郡守)를 지냈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6세손 준원(俊源)은 풍저창수(豊儲蒼守)로 이판(吏判)에 추증되었고, 7세손 탕향(湯鄕)은 중묘(中廟) 때에 전첨(典籤)의 관직을 지냈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니 파조(派祖)이다. 8세손 휘는 선묘(宣廟) 때에 평안평사(平安評使)를 지냈다. 9세손 득중(得中)은 니산현감(尼山縣監)이고, 10세손 헌(瀗)은 인묘조(仁廟朝)에 영국훈(寧國勳) 회흥군(檜興君)으로 정통사(正統使)의 관직을 지냈고, 11세손 석고(碩考)는 현풍현감(玄風縣監)이었다. 12세손 민(鈱)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이고, 13세손 여하(汝河)는 문과(文科)를 급제하였으며, 14세손 빈(彬)은 성균생원(成均生員)이고, 15세손 인섭(仁燮)은 정병사(正兵使)이다. 16세손 순외(舜外)가 곤양으로 들어온 조상이니 10대를 살고 있고, 총 10여 호이다.   문중대표는 부산시청 녹지과장을 역임한 룡(龍)이다. 종손(宗孫)은 25세손 영성(令成)으로 진주문화방송주식회사 경영국장을 역임하였고, 영호(永浩)는 백두장사(白頭壯士) 3회에 서울 올림피아드 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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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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