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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청주(淸州) 한씨(韓氏) 장간공파(莊簡公派) 송정(松亭)   시조는 한란(韓蘭)이다. 고려 태조조에 삼한통합의 공을 세워 삼중대광문하태위(三重大匡門下太尉)가 되어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한씨 세보에 의하면 한씨의 연원은 멀리 기자(箕子)의 41세손 애왕(哀王) 준왕(準王)으로 올라간다. 휘 우량(友諒)은 신라에 벼슬하여 청주 한씨를 승계하고, 우량의 후손 지원(智源)에게 만(蔓), 문(菛), 란(蘭), 영(英)의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 란(蘭)을 시조로 하고 살던 청주(淸州)를 본관으로 하였다. 14세손 휘 치례(致禮)는 시호가 장간(莊簡)인데 파조(派祖)이다. 세조조에 무과(武科)에 올라 삼조(三曹)의 판서(判書)를 지내고 판중추(判中樞) 좌리공신(左理功臣) 서릉군(西陵君)에 봉해졌다. 사은부사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내첨시 제조를 23년간 지냈다. 15세손 익(翊)은 세조조에 공조정랑(工曹正郞) 군기판관(軍器判官)으로 보조공신(補祚功臣) 병조참판(兵曹參判) 서성군(西城君)에 봉하여졌다. 16세손 숙창(叔昌)은 성종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판결사(判決事)였는데 서평군(西平君)에 봉하여 졌다. 17세손의 휘는 자(慈)인데 서양군(西陽君)에 봉(封)하였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18세손 경희(景禧)는 군자판관(軍資判官)을 지내었다. 19세손 선(璿)은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올랐다. 21세손 계수(戒守)는 임진왜란을 피하여 하동 술상(述上)으로 이거(移居)하였다. 이후 30세손 주석(周錫)이 다시 곤양 서정으로 들어와 정착하여 10여 호가 살고 있다. 종친회장 상철(相喆)이 종인(宗人)의 주선으로 영모재(永慕齋)를 창건하여 곤양으로 들어온 9대조를 시향(時祀) 하고 있다. 34세손 광희(光熙)는 육군 소장이고, 창희(彰熙)는 소령으로 예편하여 곤양 예비군중대장이며, 내규(來奎)는 호가 지안(知安)스님인데 통도사에서 근무하며 경북대학 초빙강사를 맡고 있다.   종손은 33세손인 봉희(奉熙)이다. 경규(慶奎)는 부산시청 총무과장, 상기(相基)는 대한전기사장, 상문(相文)은 하동군청 건설계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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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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