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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진양(晋陽) 하씨(河氏) 참판공파(參判公派) 송전(松田)   하씨는 진주의 토성(土姓)이다. 시조(始祖)는 고려 정종(定宗) 문종(文宗) 때에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이다. 2세손 영상(永尙)은 고려 때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9세손 즙(楫)의 호는 송헌(松軒)이고,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서해도(西海道) 안렴사(按廉使) 경주부윤(慶州府尹) 문하시랑(門下侍郞)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고, 진주부원군(晋州府院君)에 봉해지고 경덕사(景德祠)에서 제향(祭享)하고 있다. 10세손 윤원(允源)의 호는 고헌(苦軒)이다. 전리총랑(典理總郞)으로 홍건적(紅巾賊)에게 함락당한 서울을 탈환하는데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었다. 원주(原州)ㆍ상주(尙州) 목사(牧使)를 거쳐 경상(慶尙)ㆍ서해(西海)ㆍ양광(楊廣)ㆍ교주(交州) 4도(四道)의 안렴사를 지냈다. 우왕 초에 대사헌(大司憲)으로 있으면서 지비오단(知非誤斷) 황천항벌(皇天降罰)을 목판(木板)에 새겨 법강(法綱)을 세우고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1세손 자종(自宗)의 호는 목옹(木翁)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12세손 연(演)의 호는 경재(敬齋)이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태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과 승정원을 거쳐 예조판서(禮曹判書)때에 중국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금은(金銀)의 세공(歲貢)을 면하도록 하였다. 사사(寺社) 사전(寺田)을 줄이도록 건의하였다. 경상, 강원, 전라, 편안의 4도관찰사(四道觀察使)를 지냈고, 세종 27년에 우의정(右議政)이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세종 31년에 영의정(領議政) 세자사(世子師)에 오르고, 문종묘정(文宗廟庭)에 배향(配享)하였으며, 진주의 종천서원 등 여러 곳에 제향하며 저서에 󰡔경재집(敬齋集)󰡕이 있다. 13세손 효명(孝明)은 조봉대부(朝奉大夫)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으며, 참판공파(參判公派)의 파조이다. 14세손 복산(福山)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인동현감(仁同縣監)을 지내고, 병와(病臥) 중에 문종(文宗)께서 친히 병석(病席)을 위문하였다. 15세손 징(澄)은 호가 창주(滄州)이고, 통훈대부(通訓大夫) 태인현감(泰仁縣監)을 지냈다. 17세손 언위(彦緯)가 비로소 곤양으로 들어와 13대를 안거(安倨)하였다. 총 70여 호였으나 지금 곤양에는 20여 호 정도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곤명면장을 지낸 수형(守炯)이고, 종손은 29세손 수용(守容)이다. 29세손 영신(永信)은 곤양면장을 지냈고, 영백(永伯)은 경위로 진주경찰서 보안과장, 영청(永淸)은 초등학교장, 영수(永壽)는 곤양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30세손 장원(長元)은 울산 동중학교 교장에 보직되어 있고, 정원(晶元)은 단성고등학교 교사이며, 완원(浣元)은 진주 화신고속관광 여행사 대표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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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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