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晋陽) 하씨(河氏)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신당파 가화(加花) 시조(始祖)는 고려(高麗)때에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이다. 11세손의 휘는 자종(自宗)이고, 호는 목옹(木翁)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의 관직을 지내었다. 이조에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좌의정(左議政)을 추증 받았다. 12세손 결(潔)은 직장(直長)이다. 효행이 지극하여 구경당(俱慶堂)을 지어 부모를 봉양하고, 양진(良辰)을 당하면 수작(壽酌)을 드리니, <해동명적(海東名跡)>에 기재되어 있다. 병진(丙辰)에 인천군사(仁川郡事)로 제수 받았다. 17세손 휘 공헌(公獻)의 호는 신당(新塘)이니 친상(親喪)에 여모한 효자로 사람이 용감하고 큰 뜻을 품어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창솔(倡率)하고 진주성에 분전하다가 삼장사(三壯士)와 같이 동시(同時)에 전사하니 그 사실이 <임진록>에 기재되어 있다. 가호(佳湖)에 공의 사적(事跡)을 포창하여 신당(新塘) 하공(河公) 의적비(義蹟碑)를 세웠다. 곤양으로 들어온 파조(派祖)이다. 18세손 휘 의(艤)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직을 지내었다. 부수(父讐)의 미설(未雪)을 한하고 여모 3년 하였다. 20세손 휘 완(浣)은 두문불출하고 경전(經傳)과 제자(諸子)의 서(書)를 탐독하고 수제(修齊)하였다. 성방(城方)ㆍ만지(滿池)ㆍ가화(加花)의 입향조이다. 총 70여 호이나 이곳 가화에는 30여 호 살고 있다. 문중 대표는 상성(相成)이고, 종손은 낙종(洛鍾)이다. 수종(守鍾)은 곤양초등학교장이고, 종권(鍾權)은 대학교수이며, 남종(南鍾)은 경상대학교 행정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