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秋溪) 추씨(秋氏) 돈암공파(돈菴公派) 당천(塘川) 시조 추엽(秋饁)은 송(宋)나라 고종(高宗)때 사람으로 소흥(紹興) 11년 신유(辛酉)에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에 이르렀다. 고려 인종(仁宗)때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함흥(咸興)에서 살았다. 그의 손자인 휘 적(適)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編纂)하였고, 충렬왕(忠烈王)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홍문관(弘文館)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 8세손 휘 익한(益漢)은 조선 세종(世宗)때에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고, 우천공(愚川公)이다. 단종(端宗)이 폐위(廢位)되자 비통함을 그치지 못하여 관직을 버리고 입사자결(立死自決)하여 만고의 충신(忠臣)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강원도 영월(寧越)의 영모전(永慕殿)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시조 엽의 10세손인 휘 수경(水鏡)이 명(明)나라에 건너가 선조(宣朝) 24년 신묘(辛卯)에 무강자사(武康刺史)를 지냈고, 다음해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병(援兵)은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부장(副將)으로 아들 노(蘆)와 적(荻)과 함께 환국(還國)하여 곽산(郭山), 동래(東萊) 등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고, 뒤에 전주(全州)에서 살았다. 사후(死後)에 그 곳에 안장(安葬)하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追封)되어, 충효(忠孝)와 학자(學者)의 가문(家門)으로 전해지고 있다. 16세손인 휘 광량(光良)이 곤양(昆陽)에 정착하였고 23세손 휘 병하(柄夏)가 곤양 대진리로 이거하였다. 총 28호 중 곤양에 3호, 서울에 6호, 부산에 14호, 진주, 사천에 5호가 거주하고 있다. 문중대표는 26세손 갑신(甲申)이며, 사천 새마을금고 이사장 및 사천시 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26세손 갑철(甲喆)은 진주산업대학교 산림자원학과장(농학박사)이며, 종손 27세손 명환은 부산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경진(璟鎭)은 낙동강유역 환경청 허가계장, 상원(尙沅)은 삼성 SDI, UET과장, 길환(吉煥)은 공학박사로 진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