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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경주(慶州) 최씨(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 무고(舞鼓)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이며 신라(新羅)의 석학(碩學)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은 경문왕 9년 12세 때 당(唐)나라에 유학(遊學)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세인(世人)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唐)나라에서 벼슬을 하면서 비범한 재인(才人)으로 명성(名聲)을 떨쳤는데 특히 황소(黃巢)의 난(亂)때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절세의 명문(名文)으로 전한다. 29세에 귀국하여 요직(要職)에 임명되었으나 국정(國政)이 문란함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정읍(井邑), 함양(咸陽), 서산(瑞山)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어지러운 난세(亂世)를 비관하여 명산 각지를 유람하다가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 유학(儒學)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되며 많은 저술(著述) 중 <계원필경(桂園筆耕)>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장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고 있다. 3세손 승노(承老)는 어릴 때 왕 앞에서 논어(論語)를 암통(暗通)하여 경탄을 받았고, 시무(時務) 28조(條)를 올려 국가의 폐단(弊端)을 시정하고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승진되고 청하후(淸河候)에 봉해졌다. 성종(成宗)의 묘정(廟廷)에서 배향하고 있다. 5세손 재안(齋顔)은 시호가 순공(順恭)이니 현종(顯宗)때에 천령사로 거란에 다녀온 후 호부상서(戶部尙書)가 되고, 태사 문하시중(太師 門下侍中)에 이르고, 문종(文宗) 묘정(廟廷)에서 배향하고 있다. 11세손 청(淸)은 호가 관가정(觀稼亭)이니 파조(派祖)이다. 고려 때에 문과(文科)에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이르고, 감무관(監務官)을 지내었다. 고려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이태조(李太祖)가 좌찬성(左贊成)으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2세손 한지(漢止)는 사직(司直)으로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이고, 13세손 철중(澈仲)은 첨정(僉正)이며, 15세 언순(彦恂)은 호성공신(扈聖功臣)이니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고, 17공신회맹록(17功臣會盟錄)에 기재되어 있다. 17세손 응일(應逸)은 숭록대부(崇祿大夫)이고, 18세손 윤종(潤宗)은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26세손 상인(尙仁)이 진주에서 축동을 거쳐 곤양으로 이거하니 총 10호였으나 곤양에는 5호가 살고 있다.   종손은 29세손 한식(漢植)이다. 정환(正煥)은 부산경성대학교 우체국장이고, 정철(正哲)은 울산지방검찰청 407호 검사실 계장직에 보직되어 있으며 창우는 울산남부경찰서 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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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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