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연안(延安) 차씨(車氏) 강렬공파(剛烈公派) 송정(松亭)   비조(鼻祖) 연안군(延安君) 휘 효전(孝全)을 1세로 하여 문학공(文學公)ㆍ전서공(典書公)ㆍ문절공(文節公)ㆍ오산공(五山公)ㆍ일제공(日躋公)ㆍ병마사공(兵馬使公)ㆍ강열공(剛烈公) 8개파가 있다. 강열공(剛烈公)은 연안군(延安君)의 20세손 찬성공(贊成公) 휘 견질(堅質)의 둘째 아들이며, 문절공(文節公)의 조카(姪)로, 휘는 운혁(云革)이고, 호는 쌍청당(雙淸堂) 또는 송암(松菴)이다. 공은 세조(世祖) 13년(1467) 함경도 길주(吉州)에서 일어난 이시애(李施愛)의 란(亂)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반란을 정벌하여 지대한 효과를 거두었으나 세(勢)가 불리하여 적에게 사로 잡혀서 서천(瑞川) 옥중(獄中)에서 순절(殉節)하니 이 때가 75세였다. 영조(英祖)가 정평부남(定平府南) 문산면(文山面) 수봉리(輸峰里) 비석동(碑石洞)에 예장(禮葬)하고, 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이등(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二等)에 녹(錄)하여 가정대부(嘉靖大夫) 병조참판(兵曹叅判)에 추증하고, 연천군(延川君)에 봉해졌다. 공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정충대절(精忠大節)은 해와 달처럼 영광스럽다. 30세조손 휘 정창(丁敞)까지 함경도 영흥, 경기도 화성, 개성, 이천 땅에 거주하다가 고령 창령을 거쳐 31세손 휘 천발(千發) 때에 사천 장전에 정착하였다. 그 후 36세손 휘 치영(致纓)이 1840년(庚子)에 곤양으로 들어와서 3남을 두었다. 곤양으로 들어온지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20여 호의 손세(孫勢)가 늘어 났으나 서울, 대구, 부산 등지로 떠나고 현재 3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문중대표는 차정도(車正道)이고, 동생 정섭(正燮)은 산업은행본점에서 3급으로 정년퇴임하였으며, 조카 경철 조카며느리 이윤경 부부는 서울 산업대, 경기대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정섭의 딸 경희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영양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장남 대행(大行)은 한국도로공사 대구화원매표소장으로 근무하고, 차남 대주(大周)는 부산에서 동건인쇄소를 경영하고 있다. 3남 경선(京鮮)은 곤양 파크를 운영하고, 4남 경용(京龍)은 해양경찰에서 경위로 울산 해양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