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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함안(咸安) 조씨(趙氏) 덕곡파(德谷派) 환덕(還德)   시조 조정(趙鼎)은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태조 왕건을 도와 합천에서 기의(起義)하여 태조 14년 고창성(古昌城)에서 견훤(甄萱)을 대파하고 고려통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함안에 세거(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함안(咸安)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3세손 휘 단석(丹碩)은 고려조에 원윤(元尹)의 관직을 지냈다. 4세손 휘 영준(英俊)은 고려조에 형부상서(刑部尙書)였다. 11세손 휘 승숙(承肅)은 호가 덕곡(德谷)인데 두문동 72인의 한분으로 시호는 문경(文敬)이고 파조(派祖)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업이 뛰어나고 사마시(司馬試)와 문과(文科)에 장원(壯元)하여 저작랑(著作郞)이 되었다.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황제(皇帝)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下賜)받았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군(不事二君)하였다. 그 충의(忠義)는 일월(日月)처럼 빛나고, 절조(節操)는 백이(伯夷)의 백세청풍(百世淸風)이다. 덕곡 선생의 5세손 휘 은복(殷福)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인데, 어려서부터 용맹스러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곤양의 정기룡(鄭起龍)장군과 합세하여 왜적을 토벌하였다. 진주로 침입하는 왜적을 진주통판(晋州通判)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사천(泗川) 십수교(十水橋)에서 대파하였다. 이어 금산(金山)의 왜적을 추격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이 사실이 비문(碑文)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정부인(鄭夫人)은 두 아들과 함께 목단(牧丹) 미곡중(微谷中)에 피난하여 있다가 이 소문을 듣고 피를 토하며 자진하였다. 장남 정연(廷硏)은 전사(戰死)하고, 차남 석(碩)은 왜적과 싸워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았다. 비문(碑文)에 아버지는 나라에 충성하면서 죽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면서 죽고, 아내는 열녀로서 죽으니 한 가문에 삼강(三綱)이 구비하였다고 적혀있다. 6세손 휘 석(碩)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이니 비로소 곤양 환덕(還德)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7세손 휘 계수(繼壽)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에 추증되었다. 8세손 휘 신발(信發)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이다. 11세손 휘 봉익(鳳翼)은 부호군(副護軍) 겸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이다. 16세손 휘 인규(寅奎)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사직서령(行社稷署令)이다. 곤양에 들어온 석(碩)의 후손이 12~3대에 걸쳐 환덕(還德)에서 집성촌(集成村)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120여호가 이르렀으나 모두 경향각지로 이거하고 현재 환덕에는 18호가 살고 있다. 서울에 50호, 부산에 20호, 진주에 30호, 대구에 2호가 살고 있다. 16세손 명규(明奎)는 산청군 삼장면장을, 정규(井奎)는 곤양군 가리면장을 역임하였다. 17세손 용태(鏞泰)는 사천군 내무과장, 용의(鏞義)는 초등학교교장, 용균(鏞均)은 서포우체국장을 역임하였다. 18세손 경제(慶濟)는 곤양면장, 영제(永濟)는 수산청 기획관리관, 섭제(攝濟)는 동아대학장, 봉제(鳳濟)는 동아대학교교수, 한제(漢濟)는 곤양면 재무계장과 호적계장을 역임하였다. 홍제(洪濟)는 해양수산부국장, 석제(錫濟)는 울산시의회 의사국장, 점제(点濟)는 삼천포여중서무과장, 명제(明濟)는 중학교서무과장을 역임하였고, 현제(賢濟)는 밀양농업시험장 농학박사이다. 19세손 성래(聖來)는 농촌진흥청차장, 익래(益來)는 경상남도도지사, 옥래(鈺來)는 문화관광부 이사관, 석래(錫來)는 경남도청 감사과장, 형래(亨來)는 삼천리자전거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덕래(悳來)는 농산물검사소 인천소장, 을래(乙來)는 정보통신부국장, 원래(源來)는 산림조합연합회부장, 학래(鶴來)는 서울산업대학교수, 봉래(奉來)는 고려대학교수, 덕래(德來)는 진주산업대학교 교수이다. 20세손 현주(顯周)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나포리 호텔을 경영하며, 20세손 현철(顯哲)은 서울 월드 사이드 상무로 보직되어 있다. 문중대표는 19세손 형래(亨來)이고, 종손은 21세손 재(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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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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