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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진주(晉州) 정씨(鄭氏) 첨정공파(僉正公派) 서정(西鼎)   진주 정씨(鄭氏)는 본 고장인 진주에서 강씨(姜氏) 하씨(河氏)와 더불어 3대 토성(土姓)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진주 정씨는 진양 8정(鄭)이라는 말로 상식화되어 있다. 8정 중에서도 정예(鄭藝)계(系), 정자우(鄭子友)계(系), 정장(鄭莊)계(系), 정헌(鄭櫶)계(系)와 정신(鄭侁)을 시조로 하는 5파가 뚜렷한 계보를 가지고 있다. 중조(中祖) 휘 자우(子友)의 6세손 신열(臣烈)은 시호(諡號)가 은열(殷烈)이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하여졌으며, 둘째 아들(次子)의 휘는 중공(中恭)이니, 고려조에 문과(文科)에 올라 첨정(僉正)이 벼슬을 하고, 진주 선천(鐥川) 난포(蘭浦)에 세거하니 파조이다. 2세손 휘 신걸(莘傑)은 무관에 올라 숭록대부(崇祿大夫)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관직에 올랐다. 5세손 휘 방의(方義)의 호는 송운(松雲)이고, 사농소경(司農少卿)의 벼슬을 지냈다. 8세손 휘 가원(可願)의 호는 청계(淸溪)이니 본조(本朝)에 중생원(中生員)이 되고, 우찬성(右贊成)의 관직으로 안주도(安州道) 병마사(兵馬使)를 겸하고 사적이 진주 연계안(蓮桂案)에 기록되어 있다. 9세손 휘 훈(薰)은 절도사(節度使)이다. 10세손 휘 확(確)은 현신교위(顯信校尉)의 벼슬을 하였다. 이 태조 때에 비로소 남해현(南海縣)을 설치하였고, 인근 읍(隣邑)에 사대부(士大夫)를 선발(選拔)하여 살게 하였으며, 그 중에서 행의(行誼)와 학문(學文)을 겸비한 분을 교수관(敎授官)으로 임명하여, 시례(詩禮)와 충효(忠孝)의 도(道)를 가르치게 하였다. 이때에 공이 교수관(敎授官)으로 발탁되어 남해에 살게 되었는데 자손이 수십대를 살게 되었다. 11세손 휘 효신(孝信)의 호는 금계(錦溪)인데,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고, 바른 향실과 문학으로 향리에 이름이 높았으며, 이런 사실이 󰡔주지(州誌)󰡕에 기록되어 있다. 14세손 휘 난봉(鸞鳳)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많은 가장(家藏)과 문적(文籍)을 분실하였다. 16세손 휘 안생(安生)은 수증가선대부(壽贈嘉善大夫)하였다. 22세손 휘 도성(道誠)과 학영(學英)이 같이 남해에서 비로소 곤양(昆陽)으로 이주(移住)하여 총 20여 호였으나 현재 곤양에는 18호가 살고 있다.   종사(宗事)는 재권(在權)이 보고 있으며, 종손은 진우(秦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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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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