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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연일(延日) 정씨(鄭氏) 문충공파(文忠公派) 남문(南門)   고려 예종(睿宗)때의 중신(重臣)으로 추밀원지봉사(樞密院知奉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이 시조이다. 11세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파조(派祖)로 한다. 정몽주는 삼은(三隱)의 한분으로 기울어져가는 고려 왕조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역사상 대표적인 충신이며 성리학(性理學)에 뛰어나 동방리학(東方里學)의 종조(宗祖)로 추앙되었다. 공민왕(恭愍王) 9년에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고, 개경(開京)에 5부학당(五部學堂)과 향교를 세워 교육을 진흥시켰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李成桂)의 위망(威望)이 날로 커져서 개혁 세력으로 떠오르니 이 개혁 세력의 혁명(革命)야욕에 항거하여 고려를 지탱하려다가 태종(太宗)의 문객(門客) 조영규(趙英珪)등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해(害)를 당하니 그의 충절은 천추(千秋)에 빛난다. 뒤에 태종(太宗)은 포은(圃隱)의 관직을 복구시켜 영의정(領議政)에 추증하고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봉하였다.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하고 개성(開城)의 숭양서원(崧陽書院)등 13개 서원에 향사(享祀)하여 저서에 포은집(圃隱集)이 있다. 12세손 휘 종성(宗誠)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냈다. 13세손 휘 보(保)의 호는 설곡(雪谷)이니 진사(進士)로 학문에 뛰어나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았다.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가 있었고,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지내었다. 세조(世祖)때에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의 무죄(無罪)를 주장하다가 세조(世祖)에게 알려져 단성(丹城)으로 유배되었다. 숙종(肅宗)때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14세손 윤관(允寬)은 계유(癸酉)에 사마(司馬)에 등제하였는데, 손자 세필(世弼)이 귀하게 되자 통정대부(通政大夫)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추증되었다. 16세손 휘 세안(世安)은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지냈다. 18세손 휘 팔개(八凱)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20세손 휘 복룡(福龍)이 하동 옥종에 정착하였다가 27세손 대기(大基)가 곤명으로 이주하였으며 29세손 범영이 다시 곤양으로 이거하였다. 총 40여 호였으나 지금은 2호가 살고 있다.   종손은 부영(富永)이고, 30세손 규화(奎和)는 건설업에 종사하며, 용화(容和)는 이학박사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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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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