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陜川) 이씨(李氏) 목사공파(牧使公派) 흥사(興士) 시조 강양군(江陽君)의 휘 개(開)는 고려조에 불복하였으나 정포은(鄭圃隱) 이목은(李牧隱)의 주청(奏請)으로 사시(賜諡)가 문충(文忠)이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문인(門人)이며 도덕과 문장이 당대에 높았으며, 충효(忠孝) 절의(節義)는 일세의 으뜸으로 신라(新羅) 대현(大賢)이 한사람이다. 10세손인 공주(公柱)는 진주목사(晋州牧使)였고, 목사공파(牧士公派)의 파조로서 합천(陜川) 신소양에서 약 200년동안 번창하였으며, 15세손 숙향(叔鄕)이 강릉부사(江陵府使)를 역임(歷任)한 후 부사공파(府使公派)라 명명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합천군 내천에서 200년 동안 번창하였고, 21세손 광윤(光胤)은 진양군 지수면 구절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30세손 귀민(貴敏)이 용현면 백천(白川)에서 곤양으로 들어왔으며 총 30여 호이나 경향각지로 이거(移居)하고 현재 곤양에는 6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34세손 귀세(貴世)이며 종손은 35세손 영환(泳煥)이다. 35세손 창환(昌煥)은 법학박사로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