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陜川) 이씨(李氏) 목사공파(牧使公派) 성내(城內) 시조의 휘는 개(開)이다. 신라 말에 강양군(江陽君)에 봉해졌으나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불복하여 가수현장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합천호장(陜川戶長)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 태조(太祖)는 지방민과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한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그 제도의 일환인 호장은 그 지방의 성주와 호족을 자치적으로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합천이씨(陜川李氏)는 고려 초기의 합천의 호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10세손 휘 공주(公柱)는 당시 진주목사(晉州牧士)였고, 목사공파(牧士公派)의 파조(派祖)이다. 21세손 휘 옥규(玉規)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직을 지내었고, 선조(宣朝)때에 사천용현면(泗川龍見面) 구월리에 정착하여 입향조(立鄕祖)가 되었다. 용현면 구월리에 원우(院宇)가 있었다. 23세손 휘 안국(安國)은 옥규(玉規)의 손자로서 임란(任亂)때에 무과에 올라 동지들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이충무공(李忠武公)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노량해전에서 강수인(姜守仁), 신춘룡(申春龍)과 같이 기공(奇功)을 세우니, 선무원종이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의 수문장이 되었다. 이 세분을 ‘사천삼등공신(泗川三等功臣)’이라 칭한다. 31세손 한근(漢根) 삼형제가 하동 고이(河東 古梨)에서 정착하여, 판준(判俊)ㆍ시준(時俊)ㆍ근준(根俊) 삼형제를 두었으며 다시 곤양으로 이거하여 가세(家勢)는 총 13호인데 부산, 제주 등지로 이거하고 곤양에는 3호가 살고 있다. 문증대표는 33세손인 근준(根俊)인데 현재 곤양향교 의전장의(儀典掌儀)이고 34세손 삼구(三久)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씨름 협회장을 역임중이다. 맹기(孟基)는 제주도에서 수산 냉동회사 사장이고 종손(宗孫)은 춘구(春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