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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전주(全州) 이씨(李氏) 덕천공파(德泉公派) 한월(寒月)   조선조 정종대왕(定宗大王)의 제10남인 덕천군(德泉君)이 파조(派祖)로 1세이다. 휘는 후생(厚生)이고, 광록대부(光祿大夫) 영종정경(領宗正卿)으로 시호는 적덕공(績德公)이다. 성빈(誠嬪) 충주지씨(忠州池氏)께서 하얀 사슴(白麟)을 꿈꾸고 출산하니 효우(孝友)가 지성(至誠)하고 인후(仁厚)하여 ‘후(厚)’자(字)로 이름을 지었다. 태종(太宗)께서 원천(源泉)이 깊으면 마르지 않으므로 특히 덕천(德泉) 두 자를 써서 호를 정하였다. 2세손 효백(孝伯)은 신종군(新宗君)이니 태종조(太宗朝)에 문과(文科) 2등으로 병조참판(兵曹叅判) 승헌대부(承憲大夫)가 되었고, 여러 차례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황제가 그의 충성을 가상하게 여겨 황용영자(黃佣纓子)를 하사하였고, 그리고 선사(善射)하여 성조(聖祖)의 신궁(神弓)이라 하였다. 시호는 공간공(恭簡公)이다. 3세손 완성군(莞城君)의 휘 귀정(貴丁)이 정의대부(正義大夫)이고, 성종조(成宗朝)에 익운종훈(翊運從勳)에 기록되었다. 4세손 상산군(商山君)의 휘는 계보(繼保)이니 정의대부(正義大夫)이다. 6세손 추립(推立)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10세손 정(筳)은 무과로 곤양군수(昆陽郡守)를 지냈고, 한양으로 올라가자 장희빈(張禧嬪)사건에 연루되어 전 가솔(家率)이 멸문지화(滅門之禍)에 이르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 화를 피하기 위하여 과거 곤양군수로 재직한 연고를 생각하면서 곤양한월(昆陽寒月)에 아들 제년(厗年), 신년(莘年) 형제와 함께 피신하여 내려와 300여 년을 살았다고 전한다. 총 40여 호였으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곤양에는 8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21세 부산부영가구대표인 경식(慶植)이고, 종손은 20세손 鎔泰이다. 20세 태주(泰柱)는 부산지하철 동원역장으로 근무하고, 태윤(泰潤)은 창원 차룡 소방 파출소장으로 보직되어 있고, 성부(成夫)는 곤양용화사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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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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