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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성주(星州) 이씨(李氏) 문열공파(文烈公派) 포곡(浦谷)   시조 순유(純由)는 아우 돈유(敦由)와 함께 신라의 재상(宰相)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신라가 망하자 이름을 극신(克臣)이라 고치고 성주(星州)에 은둔(隱遁)하여 절개를 지키며 고려조에 불복하였다. 고려 태조의 미움을 사게 되어 호장(戶長)으로 강등(降等)되었다. 성주 이씨가 실질적으로 시조(始祖)로 하는 분은 순유(純由)의 12세손 장경(長庚)이다. 안일(安逸) 호장(戶長)이다.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조에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장경은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상호군(知典理司事上護軍)에 추증(追贈)되고,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3세(世) 휘 조년(兆年)의 호는 매운당(梅雲堂)이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니 파조(派祖)이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충혜왕(忠惠王) 때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의 관직으로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내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하여졌다. 인품이 근엄하고 곧아서 충심으로 간언(諫言)하는 일이 많았고, 충혜왕 조정에 배향(配享)되었다. 퇴계 이황이 그의 인품을 논하기를 “고려 5백년 제1인자”라고 하였다. 또한 시문(詩文)에 뛰어나 \"이화(梨花)에 월백(月白)\"란 시는 지금의 교과서에 실릴 만큼 매우 유명하다. 연봉서원(延鳳書院), 성산사(星山祠), 산청의 안곡영당(安谷影堂) 등에서 제향(祭享)하고 있다. 저서로 <나여낭림고(羅麗琅琳考)>, <육교교략(六橋稿略)>이 있다. 14세(世) 포(褒)는 충숙왕(忠肅王) 때에 등과하여 벽상(壁上)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檢校)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시호는 경원(敬元)이다. 안곡영당(安谷影堂)에서 제향(祭享)하고 있다. 15세(世) 인립(仁立)은 고려조에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내었는데 국운이 쇠퇴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유유자적하게 지내었다. 16세(世) 제(濟)는 이태조의 셋째 딸 경순공주(敬順公主)와 결혼하였으며, 이성계를 도와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으로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지고 시호는 경무(景武)이다. 부조묘(不祧廟)의 은전을 받고 태조 모정에 배향되었다. 19세손 세온(世溫)이 음부사직(蔭副司直)으로 남해로 옮겨 살았다. 24세손 통정대부(通政大夫) 휘 응상(應祥)이 사천으로 옮겨 살았다. 33세손 병득(炳得)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음직으로 곤양 포곡(蒲谷)에 정착하였다. 총 40여 호였으나 포곡에는 3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경찰공무원을 역임한 35세손 달문(達文)이며, 종손은 37세손 동식(東植)으로 대우조선소 관리과에 근무하고, 36세손 학래(學來)는 현직 경찰관이다. 승한(承漢)은 교육계에, 정한(正漢)은 마산유원연료공업(주) 상무이사로, 춘대(春大)는 (주)크라운맥주에 근무하고 있다. 34세손 덕기(德基)의 처(妻) 효열부(孝烈婦) 합천이씨(陜川李氏) 송덕비(頌德碑)를 곤양 포곡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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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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