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동성(東城) 이씨(李氏) 참의공파(參議公派) 송전(松田)   동성(東城)은 사천(泗川)의 옛 이름이다. 동성(東城) 이씨(李氏)의 선대(先代)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득관설(得貫說), 중국 농서분파(隴西分派) 이익후예설(李益後裔說) 등이 있으나 사실 고증이 어렵다. 다만 선대부터 사천(泗川)에서 세거(世居)하여 온 것은 사실로 나타나 있다. 시조(始祖) 이 식(李 軾)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국자진사(國子進士)로 송악 군수(松岳郡守)를 역임했다. 6세손 자(禾玆)가 담양교도(潭陽敎導)를 지낼 때까지 모두 6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지냈고, 후손들이 사천(泗川)에서 누대에 걸쳐 사족(士族)으로 토착 세거(土着世居)하며 동성(東城)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대표적 인물로는 후손 정(楨)이 중종(中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하여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이 되었다. 그 후 선조(宣祖) 때에 이르기까지 4조(朝)에 걸쳐 나라에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리학(性理學)에도 밝아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친교가 있었으며 󰡔성리유편(性理遺篇)󰡕을 저술하였다. 조정의 대신으로서 명나라에 건너가 당시 명나라에서도 채 논의되지 않았던 성리학 관련 최신 논문들을 가져와 퇴계에게 전달하였고, 퇴계 및 그의 문하생들은 이를 깊이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의 사상과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였으며, 21세기 오늘날에 와서 우리나라가 성리학의 대맥을 주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퇴계로 하여금 곤양군에 오게 하고, 곤양에 관련된 시를 짓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곤양 응치루에서 곤양군수 등과 더불어 정사를 논하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세손 윤(綸)이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냈고, 참의공파(參議公派)의 파조(派祖)이다. 21세손 의식(義植) 때에 곤양으로 들어왔다. 곤양에는 3호가 있다.   문중대표는 24세손 성태(成台)이고, 종손은 25세손 진(鎭)이다. 24세손 성도(成道)는 곤양우체국장을 역임하였고, 25세손 준(俊)은 행정학박사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건(建)은 방사선과 의사이다. 인(芢)은 사업가이고, 진(鎭)은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산업자원부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