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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파평(坡平) 윤씨(尹氏) 원평군파(原平君派) 가화(加花)   시조(始祖)의 휘는 신달(莘達)이다. 신라의 진성여왕 때 파주군(坡州郡) 파평(坡平)에서 탄생하여 고려 태조의 창업을 도와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대광태사(大匡太師) 경주 봉광원에 역임하였다. 중흥조(中興祖) 5세(世) 휘 관(瓘)은 대장군(大將軍)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후일 문숙공(文肅公)의 시호를 받았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군 분수원에 있으며 지금은 공원으로 되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파조는 15세(世) 원평군(原平君) 휘 목(穆)으로 이조 태종(太宗) 때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다. 태종이 처족(妻族)을 모두 삭탈관직하고 벼슬을 주지 않자 이를 부당하다하여 상소(上疏)를 올리니 태종이 크게 노하여 관직(官職)을 모두 삭탈하고 진주 집현면(集賢面)으로 귀양 보냈다. 그 후 세종(世宗)이 정2품 유수(留守) 벼슬을 하사(下賜)하여 출사(出仕)의 교지를 내렸지만 끝내 사양하고 진주에서 거주함으로써 후손들이 서부경남에 고루 분포되게 되었다. 18세(世) 휘 준빙(俊聘)은 관찰사(觀察使)이다. 19세(世) 휘 돌(突)은 통덕랑(通德郞) 부제조(副提調)이다. 20세(世) 휘 정양(廷揚)은 조산대부(朝散大夫)로 장수(長水)ㆍ사천(泗川) 현감(縣監)을 지내고, 진병마사(鎭兵馬司) 첨절사권농관(僉節事勸農官)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에서 좌수군장(左水軍將)으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28세(世) 휘 철관(哲寬)은 선략장군(宣略將軍) 훈련총관(訓練總官) 삼도통제(三道統制) 사선전관(使宣傳官)을 지냈다. 거주지는 용현면 선진(船津)에서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곤양면 가리 탑골로 이주하여 7대가 이어서 살고 있다. 후손들이 각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 총 130호였으나 곤양에는 15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32세(世) 익선(翼善)이며, 종손은 33세손 맹호(孟浩)이다. 동인(東寅)은 경찰서장(警察署長)을 지냈으며, 현재 곤양면내에는 28세손 철관조(哲寬祖) 직계후손의 종가 창호(昌鎬)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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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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