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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거창(居昌) 유씨(劉氏) 거타군파(居佗君派) 흥사(興士)   시조(始祖) 유전(劉荃)의 휘는 죽간(竹諫)이고, 호는 문양공(文襄公)이니 한태조(韓太祖) 고황제(高皇帝)의 41세 손이다. 고려에 들어와 경주(慶州) 기계현(杞溪縣)에 정착하였다. 2세(世) 견규(堅規)는 호가 백인당(百忍堂)이고, 평장사(平章事)를 지내면서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워 거타군(居佗君)에 봉하니 거타(居佗)는 지금의 거창(居昌)으로 후손들이 이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3세(世) 춘무(椿茂)는 판삼사사(判三司事)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이고, 4세(世) 성(成)은 순위장군(巡衛將軍) 숭록대부(崇祿大夫)이며, 5세(世) 찬(贊)은 광정대부(匡靖大夫) 밀직사사(密直司事)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이고, 7세(世) 해(海)는 봉순대부(奉順大夫) 판내부사사(判內府寺事) 겸 진현관대제학(進賢舘大提學)이다. 9세(世) 권(權)은 호가 영계(瀯溪)인데 고려 말에 문과에 등제하여 광정대부(匡靖大夫)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로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10세(世) 담(覃)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로서 용궁 현감(龍宮 縣監)으로 재직 중에 청백리(淸白吏)로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다. 11세(世) 항(恒)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생서령(典牲署令) 겸 훈련주부(訓練主簿)를 지냈다. 12세(世) 광손(光孫)은 성균진사(成均進士)로 사천 축동으로 이거하였다. 13세(世) 산수(山壽)는 호가 예촌(禮村)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갑산도호부사(行甲山都護府使)하니 진양지(晋陽誌)에 등재되어 있다. 14세(世) 무신(武信)은 호가 성재(誠齋)이고, 문학(文學)과 효행(孝行)으로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에 제수 받았다. 15세(世) 선홍(善弘) 선무랑 찰방(宣武郞 察訪)이고, 16세(世) 유경(有慶)은 광해군(光海君)때에 전력부위(展力副尉) 겸 사복사정(寺僕寺正)을 지내었다. 10여 대를 축동에서 살다가 24세(世) 남길(南吉)이 곤양흥사로 다시 이주하여서 총 50여 호였으나 곤양에는 5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26세(世) 일제(一濟)인데 곤양면 총무계장을 역임하였고, 종손은 27세(世) 재섭(在燮)으로 서울삼성화재에 근무하고 있다. 25세(世) 병은(炳恩)은 경정으로 부산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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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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