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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영월(寧越) 엄씨(嚴氏) 복야공파(僕射公派) 고동포(古洞浦)   엄씨의 본관은 영월(寧越) 단 본이다.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고려조(高麗朝)에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지내고 나성군(奈城君, 영월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묘소(墓所)는 영월읍 북방(北方) 오리(五里)의 동을지(冬乙旨) 산기슭에 모시었으나 단종(端宗) 3년 조선 6대왕 단종이 숙부(叔父) 세조(世祖)에게 왕위(王位)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에 유배(流配)되었다가 참사(慘死)당하였다. 그 시신(屍身)을 당시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嚴興道)가 동을지(冬乙旨)의 선영(先塋)에 염장(斂葬)하였다. 이곳이 노산군(魯山君)의 묘소(墓所)이다. 숙종(肅宗) 24년에 노산군(魯山君)의 묘(墓)를 장릉(莊陵)으로 추봉(追封)할 때에 뜻밖에도 시조공(始祖公)의 묘소는 실전(失傳)되고 비운(悲運)을 겪어야만 하였다. 광복(光復) 후 봉래산(蓬萊山) 영흥리(永興里)에 설단(設壇)하고 신도비(神道碑)를 세워 시향(時享)한다. 5세(世) 휘 광(光)은 은자광록대부상서좌복야(銀紫光祿大夫尙書左僕射)니 파조(派祖)이다. 6세(世) 수경(守卿)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이고, 7세손 윤정(允精)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며, 8세(世) 휘 비(庇)는 영월에서 출생하고 상경출사(上京出仕)하여 태정문하(泰正門下)의 시위장군(侍衛將軍)을 지냈다. 후일 낙향(落鄕)하여 영월의 호족으로 명성이 높았다. 성종조(成宗朝) 때 노사신(盧思愼)ㆍ이행(李荇) 등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군호(郡豪) 엄비(嚴庇)는 영월부 동쪽 30리 직곡부곡(直谷部曲) 육말(陸末)에 복거(卜居)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또한 전설(傳說)에 군호 엄비(嚴庇)는 육말(陸末) 옆에 살며 큰 연못가에 암말을 매어 두었는데 용(龍)이 나타나 사귀더니 망아지 한 필(匹)을 낳았는데, 달리기에 절군(絶群)의 천리마(千里馬) 였다고 한다. 9세(世) 인보(仁輔)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이며, 가선대부 도총부(嘉善大夫 都惣府) 동지제(同知制) 정평군(定平君)에 봉하였다. 12세(世) 세윤(世胤)은 통덕랑(通德郞)이니 다시 함경북도(咸鏡北道) 복귀(福貴)로 이거(移去)하여 10여 대를 살았다. 14세(世) 상중(尙中)은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이고, 18세(世) 만원(萬元)은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26세(世) 형준(亨俊)이 북(北)에서 부산(釜山)으로 이거(移去)하여 현재 부산에는 30호가 살고 있으며, 곤양에는 단 2호(戶)만 살고 있다. 종손(宗孫)은 28세(世) 인혁(仁赫)이며, 현재 가나안 농장(農場)을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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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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