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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수원(水原) 백씨(白氏) 별좌공파(別坐公派) 삼동(三洞)   백씨(白氏)는 문헌에 의하면 중국 황제의 후손인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이다. 백을병(白乙丙)의 원손(遠孫) 백우경(白宇經)이 소주 출신으로 당(唐)에서 선덕왕(善德王) 원년(元年)에 신라로 건너와 시조가 되었다. 계림(鷄林) 자옥산(紫玉山)에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菴)을 지어 정착한 것이 수원 백씨의 연원이다. 그 후 신라 경명왕(景明王)때에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휘 창직(昌稷)을 1세로 계대(系代)한다. 창직의 증손(曾孫) 휘(揮)는 고려 목종(穆宗) 때에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으로 수원군(水原君)에 봉하여졌다. 9세(世) 휘 천장(天藏)이 원(元)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고, 고려 충선왕(忠宣王)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수원백(水原伯)에 봉하여졌으므로 수원(水原)을 관향(貫鄕)으로 하였다. 16세(世) 휘 인호(仁豪)는 수성백(隨城伯 : 수원의 옛 이름) 천장(天藏)의 7대손으로 조선조에 세자사부(世子師傅)를 역임한 15세손 익수(益竪)의 아들이며, 사언진사(士彦進士)로 학행(學行)이 뛰어나 봉훈랑(奉訓郞) 사포서(司圃署) 별좌(別座)로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 후 수원백씨 29개 파 중에서 별좌공파(別座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파조(派祖) 인호(仁豪)는 아들 4명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 유온(惟溫)은 장단부사(長端府使)를 지냈고, 둘째 아들 유량(惟良)은 진주(晋州)경내 배춘리(培春理)에 정거(定居)하였다. 20세 휘 서한(瑞翰)은 벼슬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었고, 인조(仁祖) 23년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선전관(宣傳官) 겸 수사부(壽司部)에 제수(除授)되고, 효종(孝宗) 2년에 남부주부(南部主簿)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거쳐 경주통판(慶州通判)을 지냈고, 그 후 전라병사(全羅兵使)로 승진되었으며, 사복장(司僕將)을 거쳐 숙종(肅宗) 4년에 경상도(慶尙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재직 중 많은 치적(治績)을 남겼으며, 또 공(公)은 사천(泗川)을 빛낸 인물(人物)로 이러한 사실이 읍지(邑誌)에 등재(登載)되어 있다. 곤양(昆陽)에 들어온 입향조(入鄕祖)는 27세 낙인(樂仁)이니, 사천 배춘리(培春里)에 이거하여 30여 세대가 살다가 경향각지로 이사하고 곤양에는 10여 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30세손 학진(鶴晋)으로 곤양면장을 지냈으며, 수원백씨 사천종친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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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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