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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분성(盆城) 배씨(裵氏) 후전(後田)   성(姓)을 얻은 모두의 시조(都始祖)는 배지타(裵祗沱)이고,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 현경(玄慶)이 중시조(中始祖)이니,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일등공신에 오르고, 도읍을 송도(松都)로 옮길 때에 개주도찰사(開州都察使)로 공을 세웠고,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많은 공을 세워 대상행이조상서(大相行吏曹尙書)를 지내었고, 태사사(太師祠)에 향사하고 있다. 휘 원룡(元龍)은 고려조에 등제(登第)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도원수(都元帥)의 관직으로 분성군(盆城君)에 봉하니 수관(受貫)의 파조이다. 성주(星州) 달성(達城) 흥해(興海)로 여러 관(貫)이 있지만 모두 경주(慶州) 배(裵)씨로 알려져 있다. 4세(世) 휘 정배(廷裴)는 감무어사(監務御使)로 전객령(典客令)이요, 5세(世) 휘 찬(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무창군수(茂昌郡守)이다. 7세(世) 휘(諱) 문보(文甫)의 호는 세한재(歲寒齋)인데 중종(中宗) 병술(丙戌)년에 문과(文科)에 등제하여 고양군수(高陽郡守)를 지내었고,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장공(忠壯公)이다. 10세(世) 휘 집(緝)은 선조(宣祖) 갑오(甲午)년에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를 거쳐 양산군수(梁山郡守)를 지내었다. 16세(世) 휘 한문(漢文)인데 통덕랑(通德郞)의 관직을 지내었다. 창녕(昌寧)에 재직중 1728년 영조왕(英祖王)때에 노론(老論) 소론(少論)의 당쟁을 피하여 곤양 무고리 이명산(理明山) 아래로 은거(隱居)하니 입향조(入鄕祖)이다. 18세(世) 휘 치복(治福)은 정릉태봉(貞陵泰奉)이다. 21세(世) 휘 경록(景錄)은 승정원(承政院) 우부승지(右副承旨)의 교지(敎旨)를 받았고, 휘 경하(景夏)는 통헌대부(通憲大夫) 교지를 받았다. 후손이 약 100여 호이지만 전국 각지에 분산되어 있으며, 곤양에는 17호가 살고 있다. 무고리 원동(院洞)에 세모재(歲慕齋)를 지었으며, 문중대표는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재계(在桂)이고, 종손은 기호(基浩)이며 차종손은 학만(學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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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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