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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남평(南平) 문씨(文氏) 강성군파(江城君派) 사동(仕洞)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이니 호는 삼광(三光)이고, 시호는 무성(武成)이다. 전남 나주의 장자지(長者池)의 석함(石函)에서 태어났다. 장연서원(長淵 書院)에서 향사하고 있다. 중시조는 문익(文翼)이니 고려 숙종 때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지냈으며 시호는 경절공(敬節公)이다. 12세(世) 문익점(文益漸)의 호는 삼우당(三憂堂)이고 시호는 충선(忠宣)이다. 고려 공민왕 때에 문과 급제하여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에 갔는데 원순제의 노여움을 사서 교지(交趾) 땅에 유배(流配)되었다가 석방되어 돌아오는 길에 당시 금수품(禁輸品)인 면화(棉花)씨를 가져와 우리나라의 의류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가 망한 후 조선의 이태조가 수차에 걸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효행이 지극하여 왕의 특명으로 효자비(孝子碑)를 세우고 또한 성리학에 밝았다. 태종 때에 첨지의정부사(叅知議政府使)로 강성군(江城君)에 봉해지고 부조묘(不祧廟)를 세웠다. 세종 때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어 부민후(富民侯)에 추봉(追封)되었다. 13세(世)의 휘는 중실(中實)이니 문과 간의대부(文科 諫議大夫)이고, 시는 의안(毅安)이다. 14세(世) 자(蔗)는 무과에 오르고, 문장이 대성(大成)하여 문무(文武)가 겸비하여 세인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17세(世) 휘 숙(叔)이 곤양으로 들어와 산지 300여 년이 넘었다. 22세(世) 이표(以表)는 통정대부(通政大夫)다. 23세(世) 유신(有信)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이다. 28세(世) 창원(昌源)은 통정관(通政官)이고, 창진(昌鎭)의 호는 취석(醉石)인데 학문이 연박(淵博)하여 세인들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총 30여호이나 곤양에 8호가 살고 있고 여타는 서울을 비롯하여 경향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문중대표는 30세손 광무(光武)이고, 종손(宗孫)은 33세손 봉오(鳳梧)이다. 31세(世) 우상(遇尙)은 민선진주시장을 역임하였고, 한상(翰尙)은 전 곤양면장을 역임하였다. 표상(彪尙)은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하고, 31세(世) 주상(周尙)은 대구호성염직사장이며 곤양고등학교 호성장학회장이다. 순상(舜尙)은 인천화영주물공업 사장이고, 곤양초등학교 화영장학회장이며, 경춘(景春)은 한국방송공사 심의위원을 역임하였고, 국상(國尙)은 향토예비군 곤양면대장을 역임하였다. 법상(法尙)은 이화여고 서무주임을 역임하였으며, 소상(召尙)은 중앙정보부 서기관을 역임하였고, 대상(大尙)은 한국항공공사 항공기술훈련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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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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