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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김해(金海) 김씨(金氏) 금령군(金寧君) 목경파(牧卿派) 와티(臥峙)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고, 파조(派祖)의 휘는 목향(牧鄕)이니 고려조에 삼중대광(三重大匡) 금령군(金寧君)에 봉하고 아들 충간공(忠簡公) 휘 보(普)는 충정왕 때 좌시중(左侍中)을 지냈다. 6세(世) 진손(震孫)은 세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봉상시주부교리(奉常寺主簿校理) 등을 역임하였고, 예문관 제학(提學)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다. 7세(世) 휘 영견(永堅)은 단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로 세종실록편찬에 참여하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가 되었다. 10세(世) 희우(希禹)는 호가 적송정(赤松亭)이다. 서경덕 문하에서 교류하여 이수(理數)의 학(學)에 심오(深奧)한 경지를 이루었으며 퇴계 선생과 이기학(理氣學)을 논하였다. 10세(世) 휘 덕승(德承)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이다. 손자(孫) 우항(宇杭)의 귀(貴)로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을 추증하고, 문집이 남아 있다. 14세(世) 휘 우항(宇杭)의 호는 갑봉(甲峯)이다. 현조조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사간원, 사헌부, 예조, 병조를 거쳐 시강사서가 되고, 화양부사(華陽府使)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좌참찬(左參贊)을 지내고 조선조에서 유일한 정승이며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16세손 계봉(桂鳳)이 곤양으로 들어와 살았다. 17세(世) 승손(承孫)은 영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였다. 30여 호가 있었으나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고 와티에 네 집이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윤조(允祚)이고 종손은 기태(祺泰)이다. 23세(世) 윤기(允基)는 의령군청 공무원이고, 웅기(雄基)는 김해시 동진정보기술 대표이사이며, 문수(文守)는 수협중앙회, 용수(容守)는 KBS 중앙방송에 근무한다. 용석(容錫)은 서울시 도봉구의회 의장이고, 봉기는 진주경찰서, 용주는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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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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