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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김해(金海) 김씨(金氏) 군수공파(郡守公派) 고동포(古洞浦)   시조(始祖)는 가락국(駕洛國) 태조(太祖) 수로왕(首露王)이다. 중시조(中始祖)의 휘(諱)는 관(管)이고, 호(號)는 정성(靖醒)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충목왕(忠穆王) 을유(乙酉)에 국자사업(國子司業) 판도판서(版圖判書)의 관직(官)을 지내었다. 5세(世) 휘 극일(克一)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향토의 사람들이 절효선생(節孝先生)이라 불렀다. 통선랑(通善郞)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의 관직을 지내었고, 사적(事蹟)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기재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정려비(旌閭碑)를 세웠다. 6세(世) 휘 건(健)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의 관직과 군수(郡守)를 지내어 군수공파(郡守公派)라 한다. 14세손 준원(俊元)은 천성이 순후(純厚)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여묘(廬墓) 3년에 유호위방(有虎衛傍)하여 향유(鄕儒)가 정장(呈狀)하여 특별히 은전(恩典)을 입었고, 자헌대부(資憲大夫) 겸(兼) 오위도총부(五衛都總府) 부총관(副惣管)으로 증직(贈職)되었다. 15세(世) 중철(重哲)의 호는 성헌(誠軒)이다. 영조(英祖) 무신(戊申)의 변란에 백형(伯兄)과 같이 부군(赴軍)하여 많은 군공(軍功)을 세우고 󰡔삼강록(三綱錄)󰡕에 기재되어 있다. 사유(士儒)의 정장(呈狀)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의 은전(恩典)을 받았다. 16세손 인후(麟垕)의 호는 송파(松坡)인데 사마시(司馬試)에 오르고 기장(機張)ㆍ낙안(樂安) 청주(淸州)의 영장(營將)과 부산 첨사(僉使)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18세(世) 광채(光采)가 집이 불타는 큰 변을 당하여 비로소 곤양 가리로 이사하였다. 19세(世) 기은(基銀)의 호는 일고(一古)이다. 20세(世) 병엽(秉曄)의 호는 양란(陽蘭)이니 문망(文望)으로 이름이 높았다. 21세(世) 전호(全鎬)는 승훈랑(承訓郞)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秘書監)에 추증(追贈)되었다. 손세(孫勢)는 60여 호이지만 곤양에는 3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옥근(玉根)이고, 종손은 24세손 병규(炳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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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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