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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김해(金海) 김씨(金氏) 감무공파(監務公派) 사군파 송정(松亭)   시조(始祖)는 가락국(駕洛國) 태조(太祖) 수로왕(首露王)이다. 중조(中祖)의 휘는 익경(益卿)이다. 고려 말 충숙왕(忠肅王) 때에 감무(監務)의 관직을 지내었다. 9세손 휘 완(完)은 조선 인조 2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삼등공신(振武三等功臣) 학성군(鶴城君)으로 봉작(封爵)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휘 극조(克祧)는 이성(利城) 현감(縣監)을 지내었는데, 그의 아들 완(完)의 무훈(武勳)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 학천군(鶴川君)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완의 아들인 휘 여수(汝水)는 해성군(海城君)에 봉(封)해지고, 완의 손자인 휘 세기(世器)는 학림군(鶴林君)에 봉해지니 일문(一門)에 4군(四君)이 배출(輩出)되어 사군파(四君派)라 한다. 그 후손이 대대로 전남(全南) 영암(靈岩)에 살았는데,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학성군(鶴城君)의 조카 여균(如均)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贈)해졌다. 임진왜란 후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송문리(松門里) 미법(彌法)에 이주하여 10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현재는 각지로 흩어져 살고 있는 실정이다. 곤양으로 들어온 선대 이하의 선대를 선영(先塋)에서 시향(時享)하고 있다. 파조(派祖)로부터 17세손 휘 석준(錫俊)이 다시 곤양으로 이주하였다. 18세손 관태(寬泰)는 상농(商農)을 자영(自營)하고, 그의 아들 19세(世) 성오(聖五)는 곤양향교 전교(典校)로 유학진흥에 이바지하였다. 그의 자 20세(世) 정수(廷秀)는 교육행정관으로 봉직하였고, 18세손 신태(信泰)는 정5품 통덕랑(通德郞)을 지냈으나 사적(事蹟)이 분명하지 않다. 19세손 상조(相祚)의 아들 20세손 문갑(文甲)은 지방행정관리로 봉직하였고, 문재(文在)는 부산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중대표는 문갑(文甲)이며 종손은 정수(廷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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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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