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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곡부(曲阜) 공씨(孔氏) 사성공파(司成公派) 송정(松亭)   공씨는 곡부(曲阜) 단 본이며 시조는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이다. 그의 53세손 완(浣)의 둘째 아들 소(紹)가 충정왕(忠正王) 3년 원(元)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공민왕(恭愍王) 비(妣)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州)를 배행하고 고려에 와 歸化하여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으며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창원(昌原)으로 사적(賜籍) 받았다.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본관을 창원으로 하였다. 그러나 정조(正祖) 18년에 노(魯)나라의 공씨(孔氏)와 본관을 같이하기 위해 공자의 고향인 곡부를 관향(貫鄕)으로 하사(下賜) 받아 곡부공씨라 일컫게 되었다. 공씨는 고려조에서 소(紹)의 아들 공여(孔帤)와 손자 공부(孔俯) 공은 형제가 이름을 떨쳤다. 55세(世) 공여는 고려 말에 집현전(集賢殿) 태학사(太學士)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56세(世) 공은은 호가 고산(孤山)이니 우왕 때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은퇴하여 절개를 지켰다. 57세(世) 신굉(臣肱)은 신호위대장군(神護衛大將軍)이다. 58세(世) 휘 전(畋)은 사성(司成)이고,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냈고, 사성공파(司成公派)의 파조이다. 59세(世) 휘 화(和)는 제학(提學)이다. 60세(世) 휘 규(珪)는 호가 학당(學堂)인데 학문이 심오하고 중종(中宗) 무진(戊辰)에 등제하여 예문관(藝文館) 봉교(奉敎)겸 양관제학(兩館提學)을 지냈다. 단종(端宗) 때 조상치(曺尙治)와 같이 자규루시(子規樓詩)를 짓고 사육신(死六臣)과 더불어 충절로 이름을 날렸다. 61세(世) 휘 정일(丁逸)은 성균진사제용감(成均進士濟用監)이다. 62세(世) 후민(厚敏)은 사옹원첨정(司瓮院僉正)이고, 64세(世) 휘 우섭(禹燮)은 호가 남은(南隱)이고 통정(通政)이다. 65세(世) 휘 건(建)은 호가 해송(海松)이니 무참봉(武參奉)하였다. 73세(世) 휘 윤록(允祿)이 비로소 곤양 용산(龍山)으로 이거하여 6호가 살고 있다.   문중대표는 77세손 정식(貞植)이고, 종손은 77세손 수열(守烈)이다. 77세손 재성(在聖)은 대구문화방송국 편성국장이고 대통령표창을 비롯한 많은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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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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