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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진양(晋陽) 강씨(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성내(城內)   시조(始祖)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高句麗)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로 많은 공을 세웠다. 중시조 민첨(民瞻)은 목종(穆宗) 때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시랑공(侍郞公) 하공진(河拱辰)과 함께 문무(文武)를 겸비한 입상출장(入相出將)의 대표적 인물이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오르고 태자태전(太子太傳)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은열공(殷烈公)이다. 진주 옥봉남동 개경향(開慶鄕)은 공(公)의 출생지로 후손들이 사우(祠宇) 은열사(殷烈祠)를 세워 제향(祭享)하며 문화재 기념물 제14호로 보호하고 있다. 중시조 이후 6세(世)에 와서 밀직공파(密直公派) 원길(元吉), 첨사공파(詹事公派) 원감(元鑑), 학사공파(學士公派) 원찬(元鑽), 호부사공파(戶部士公派) 원전(元鐫), 사평공파(司評公派) 원함(元咸), 진사공파(進士公派) 원익(元益) 등 6대 파로 크게 분파 되었다. 그 중 첨사공파(詹事公派)도 8세(世)부터 17세(世)를 전후하여 17개 파로 나누어졌는데, 첨사공(詹事公)의 5대 손인 휘 원발(元發)이 정순공파(正順公派)의 파조이다. 정순공은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종부시사(判宗簿侍事)에 이르고, 삼중대광(三重大匡) 전법판서(典法判書) 좌익공신(佐翼功臣)으로 추증되었다. 12세(世) 휘 슬(瑟)은 고려 말 문과장원으로 급제하여 현풍(玄風) 감무(監務)를 거쳐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불사(不仕)하였다. 13세(世) 휘 자경(自警)은 조선조에 이르러 비안(比安) 현감(縣監)을 거쳐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 춘추관(春秋館) 수찬관(修撰官)을 역임하였다. 14세(世) 역(朂)은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진천군(晋川君)에 봉(封)하였고 공(公)의 제이자(第二子) 휘 승중(承重)은 세조(世祖) 임오(壬午)에 문과 이조정랑을 지내어 정랑공파(正郞公派)라고도 한다. 16세(世) 휘(暉)는 호종공신(扈從功臣)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이요, 23세(世)는 의숭(義崇)이요, 여러 대(代)로 진주와 산청 등에 세거(世居)하다가 25세(世) 문망(文望)이 곤명 성방으로 이거하였고, 29세(世) 휘 상조공(相祚公)이 다시 곤양에 정거(定居)하였다. 30세(世) 재관(在寬)는 곤양면장을 역임하였고 곤양면 향토발전과 교육계에도 오래 근무하였으며 공적비(功績碑)도 세워져 있다. 공의 남 대성(大成)은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수성(洙成)은 경상남도 부지사를 지냈으며, 을성(乙成)은 세무서장이요, 두성(斗成)은 경찰공무원을 역임하였다. 춘성(春成)은 도의원을 지냈고, 전국농업기술자협회장을 역임하였다.   문중대표는 31세손 춘성(春成)이고, 곤명과 진주 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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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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