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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11. 誠齋精舍記 ◦소재지 : 무고리 상평 旧昆陽舞鼓里有坪村昔誠齋安公隱居之地也. 公正廟時人今爲百數十年衣履之臧在村前不五里而近而薖車丑之所墟而無傳矣. 玄孫盛燦炳燦與 其族敬烈德龍炳述炳權炳基等相議曰 我等雖散在各地奔走謀生. 若不念吾祖昔日薖車丑之地無數間屋以爲寓慕之所則豈子孫之道. 哉况歲歲修芬苾于塡前而齊明會族之亦不可無所乎. 乃以今年正月築三間屋于村中稍爽山豈地越四月役低竣. 而始飮落焉屋雖末雄壯鞏固明潔可以謂苟完. 扁曰誠齋精舍詣不侫以楬楣之文不侫曾已爲公抽筆於羡門之刻矣然盛燦曁炳燦之先君嘗遊我仁谷之門 其爲先有事固當贊羙則豈可以重疊爲嫌而辭之哉. 竊惟公稟性沉重潁悟不念世之奔競於功令之學. 惟從事乎爲已務實非周張程朱之書不於案上時時從賢師友討論講質. 孝友是出天之至性甘旨之供寒暖之視出告反面之節洞屬無 少違以至老萊之戱側陸績之懷歸二皆效焉 前後侍二親之癠嘗糞 禱天而靡效轉劇則竟割股斫指不恤其身 及遭故哀毁幾殊三年如一日 是以鄕中士友屢度呈狀得蒙棹楔之典 矣噫孝是眞衷攸出非勉强假飾爲也. 故有孝心者事事皆以眞衷做去而無越常過分之獘孝爲百行之源者卽此也. 公有至孝故子三友堂三昆季亦以孝 艾復戶孫槿齋松岡亦以孝稱孝子不匱永錫爾類者亦此也. 見今世降俗渝人面而獸心者 許多橫行矣. 當此之時 其聞公之風者或有感嘆而增慕者乎否乎 歲乙卯重陽節 安東 權昌鉉 記

성재정사(誠齋精舍)

성재정사기   옛 곤양 무고리 평촌은 옛날 성재(誠齋) 안공(安公)이 거처한 곳이다. 公은 정조(正廟)때의 사람이다. 백 수십년된 묘소가 무고 앞 5리 가까이에 있지만 살았던 곳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손(玄孫) 성찬(盛燦) 병찬(炳燦) 씨가 그의 일족 경열(敬烈), 덕룡(德龍), 병술(炳述), 병권(炳權), 병기(炳基) 등과 더불어 상의하였다. 우리들이 비록 생계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조상님들께서 살고 계셨던 곳에 수 칸의 집이라도 지어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여 드리지 못한다면 어찌 자손의 도리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해마다 제사를 모시고, 종족이 모이는 곳이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이에 금년 정월에 마을 중 좋은 곳에 삼 간 집을 지어서 4월에 준공하였다. 집의 모습은 비록 웅장하다고 할 수 없지만, 견고하고 밝고 깨끗하여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할 것이다. 이름을 성재정사(誠齋精舍)라 하고 나에게 와서 글을 청하였다. 옛적에 나는 공의 묘비문(墓碑文)을 지어준 적이 있다. 또 성찬(盛燦) 병찬(炳燦)의 선친과 나는 인곡(仁谷)서당에서 함께 학문한 바가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선친을 위한 일인데 당연히 찬미하여야 마땅한 일이지 중복되는 일이라고 어찌 내가 사양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보건대 공의 성품은 깊고 신중하며 영리하였다.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명(功名)의 학(學)은 생각지도 아니 하였고, 오로지 몸을 가다듬고, 실행에 힘썼다. 성현(聖賢)의 서책(書冊)이 아니면 책상 위에 두지 않았으며, 어진 스승과 벗을 따라 토론, 강의, 질문하였다. 효도와 우애는 하늘에서 타고난 성품이었다. 부모님을 모심에 있어서 따뜻하고 차가움을 살피고,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반드시 알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조금도 어기지 아니하였다. 옛날 늙어서도 색동옷으로 차려입고 부모님의 곁에서 춤을 춘 노래(老萊)의 효행과 맛있는 유자를 가슴에 품고 와서 부모님에게 드렸던 육적(陸績)의 효행을 다 본받아 행하였다.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앓으시자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기도하였지만 아무 효험이 없자 마침내 자기 살을 깎고 손가락을 자르는 등 부모에게 효도함에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슬픈 마음으로 삼 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이 일로 고향의 선비와 지인들이 여러 차례 표창 상신문을 올려 정려(旌閭)의 은전을 받았다. 아! 효도는 충심에서 나오는 것이지 소란을 떨고 꾸미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효도스런 마음을 가진 자는 매사(每事)를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하고 있지 일상의 도(道)를 벗어나거나 과분하게 넘치는 폐단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효행(孝行)은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라 한 것이다. 공(公)께서 지극한 효행(孝行)을 실천하였으므로 아들 삼우당(三友堂) 삼형제가 또한 효행으로 가문을 일으켰고, 이어 손자 근재(槿齋)ㆍ송강(松岡)도 효행으로 이름을 알리니 효자는 끊이지 않고 길이길이 전하여진다하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은 세상 풍속이 어지러워져서 얼굴은 사람이지만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가 많다. 이런 시대를 당하여 공의 어진 효행을 듣고 또 감탄하여 더욱 사모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아니한가?   을묘년 음 9월 9일에 안동 권창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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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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