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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10. 屛山齋上樑文 ◦소재지 : 무고리 상평 兒郞偉君子治生之道. 必貴夫貯蓄範圍. 恒人奉先之誠. 常驗於建立方面. 期恔心而後已. 蓋有志而竟成. 恭惟晋山處士鄭公隅谷雲孫梅溪肖裔. 夷考世德. 昆季八平章. 旁推時論. 有源流十同貫. 文彩縻少槪見倘是不言躬行. 星霜, 重隹亦屢經, 終嗟無跡可證. 寔爲入鄕之祖, 因作築基之家. 三世單傳名賢之血統不絶. 三鳳蕃衍來許之印植已深. 素履而行. 自有名敎內之樂地. 靑氈勿失. 諒爲世業中之奇珍. 蓋鄭氏之初來屬韓朝之晟際. 東方著姓. 爰揭於藝閣之編. 南服名家. 早登於圃翁之詠. 布濩八域. 非如楊氏之僅稱岷. 零贊百齡. 亦異歸姓之無紀秦漢. 雖鄕井稍遠. 抑卜築之攸宜. 然而三百年間. 迄無宗閣一座. 所以數十戶內, 纔占洞山半規, 載興闔族. 嘅歎賴有獨賢之宇. 積費屢世料理無退步之心. 不量蚍蜉力之甚微. 只信龜筮兆之允恊. 斥地中麓. 爽塏可忻. 寫材旧庄. 侹直無比. 毋徐毋疾, 斤斧之聲相聞, 不陋不華, 堂廡之制. 亦稱. 時固有待. 事非偶然. 三陽回泰. 縱過營室之月. 百福鼎至. 預占充閭之祥. 渠渠廈千間, 何賴於我, 洋洋歲一祭, 庶飮於斯. 棟宇聳觀. 林壑獻媚. 爰稽邨號, 想元凱穿禮之才. 覃及山名見 彦冲招釰之槪. 大呼許許方圖虹霓之懸. 頻來知知. 適有燕雀之賀. 聊述短唱, 助擧高抛. 樑之東臥龍山色聳蒼空 屈信以蟄存身處緬憶當年隅谷翁. 樑之南 一秣金鰲海氣涌中有仙娥遙寄語朝朝採進草宜男. 樑之西理明峯屹入雲倪男兒見事知何許百里秋毫眼不迷. 樑之北雙鳳于飛翹彩翼快覩昇平應不遠雝雝遺響滿江國. 樑之上天池直與銀河漲扶搖九萬乘培風誰識異時騫翥狀. 樑之下二水合襟流大野 灌漑稻梁常有餘且湘蘋藻享純古段. 伏願上樑之後天日增明. 神人胥悅. 玄窀永寧. 隨貽弈世陰隲之福. 英才續出. 克述古家扌需染之風 癸巳元月下澣永嘉 權道溶 頌

병산재(屛山齋)

병산재 상량문   어랑위! 군자(君子)의 치생(治生)하는 도리는 저축(貯蓄)함이 중하고 항인(恒人)의 봉선(奉先)하는 성심은 재실을 창건하는데 있다. 마음으로 항상 쾌(快)하여야하고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지도다. 공손이 생각한건데 진산처사(晋山處士) 정공(鄭公)은 우곡(隅谷)의 후손이요, 매계(梅溪)의 자손이라. 세계(世系)를 삼고하니 형제(兄弟)가 팔평장(八平章)이요, 시론에 의하면 한 조상에서 열파의 관행이 있다. 문채(文彩)는 적으나 말없이 행하도다. 세월이 오래되어 유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분께서 입향(入鄕)한 조(祖)요, 터를 닦은 가문이다. 3세에 명현의 혈통을 이어왔고, 삼봉(三鳳)이 번창하여 후손에게 인식(印植)이 깊었도다. 검소하게 행사하니 명교(名敎)에 즐거움이 있고 가보(家寶)를 잃지 아니하니 세업 중에 보배로다. 대개 정씨(鄭氏)의 처음은 한(韓)나라의 융성한때요, 동방의 대성이라 예각(藝閣)의 책에 기재되어있으며 우리나라의 명가이다. 일찍 포은(圃隱)선생의 시(詩)에도 찬양하였으며 팔도에 퍼저 살고 있으니 양씨(楊氏)의 칭민(稱岷)과 다르며 백년 동안 영체 하였으나 기록이 없는 타성(他姓)과 다르도다. 본고향은 비록 머나 터를 정한 곳은 마땅하도다. 그러나 삼백년간 종실 하나 없더니 수십호 집안에서 동산(洞山) 좋은 터를 가려서 일족이 합심하여 훌륭한 재실을 이루었고 여러 해로 재물을 저축하였도다. 개미처럼 약한 힘은 헤아리지 아니하고 길조(吉兆)의 점을 믿고 일하였도다. 터를 산 중록에 닦으니 좋은 명지요, 재목(材木)을 옛산장에서 구하니 바르고 튼튼하도다. 빨리도 아니하고 늦추지도 아니하니 도끼와 짜구 소리가 서로 들리고 누추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니 재실로서 제도에 맞도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것이요, 일은 우연히 되는 것은 아니다. 삼양(三陽)이 크게 돌아오니 영실(營室)의 달은 지냈으나 백복이 아울러 이르니 집안에 서기(瑞氣)가 가득 차도다. 크고 큰집 천간(千間)이 무엇하리요, 양양(洋洋)히 시제(時祭)를 이곳에서 모실 것이다. 마을 이름을 삼고하니 원개(元凱)의 천례(穿禮)가 상상되고 산명(山名)을 살펴보니 언충(彦沖) 초검(招劒)의 기개로다. 기등과 들보에는 무지개가 서리고 제비와 새들의 축가가 들리도다. 짧은 노래를 불려 들보 올리는데 도운다.   들보의 동(東)은 와룡산이 창공에 솟았으니, 안고 펴고 살면서 존신하는 곳이나, 옛날의 우공옹을 생각한다.   들보의 남(南)은 한뫼뿌리 금오산이 바다위에 솟았으니, 그 중에서 선녀가 노닐면서 아침마다 의남초(宜男草)를 캐어 오도다.   들보의 서(西)는 이명봉(理明峯)이 높이 구름위에 솟으니 남아(男兒)가 일을 당하면 어찌 하리요, 백리 밖의 일이라도 조금도 그릇되게 하지 않는다.   들보의 북(北)은 두 봉황새가 높이 날아 채색 날개를 드리우니 태평세월이 멀지 않도다. 옹옹히 울음소리가 강국(江國)에 들리노라. 들보 상(上)은 하늘 못이 은하수와 같이 불었다. 구만리(九萬里) 하늘을 바람따라 오르니 누가 다음에 하늘을 나는 형상을 보겠느냐? 들보의 하(下)는 두 물이 합하여 앞들에 흐르니 곡식에 물대고 남음이 있다. 또한 빈조(蘋藻)를 삶아서 대복을 누리도다.   원(願)컨대 상량(上樑)한 후로 하늘과 태양이 더욱 밝고 귀신과 사람이 서로 즐거우며 유택(幽宅)이 길이 편안하여 음복을 내리고 영재(英才)가 많이 나서 고가(古家)의 풍을 계승할 것이다.   계사년 1월 하순 영가 권도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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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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