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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4. 武山齋記 ◦소재지 : 곤양면 무고리 晋東月牙山下東山村卽姜氏世居之地而文景文良文簡三文字公幷生之村輿地所謂晋州人才半在月牙山下者是地.文景公弟執義公以道學享昇岡院.是爲分派祖也.至孫通德郎諱沄後孫之在河昆泗間者其麗不少而一派之在昆陽武庫洞已近十數代累世先山近遠在在歲恨者久矣去年秋宗議僉同謀建一舍使宗人姜文中奉中相中裏所傳文績來余而請揭板之文余雖不文同宗之地誼不可辭乃書其祖先之由來及其後仍守本之規謨而於旧韓戶籍知來昆之儒業於數章敎旨知中葉之宦族矣然世入蕩自末免寒散今日何世禮敎癈矣倫綱墜矣彼高樓巨閣追遠慕爲揭號而處處在在者子孫之能繼而守護不爲雀蠹所漹正幾處乎惟吾宗今日建築非遠有意思不能也.以睦族爲所奉先爲所期不墜晋來祖先之芳香則豈非斯世之表影乎勉乎哉山水之幽奧風光之朝暮登斯齋可感不必槪說焉是爲之記. 檀紀 4309년 丙辰 三月 淸明節 傍裔大韓民國制憲議員 姜達秀 撰 金海人 金相淵 書

무산재(武山齋)

무산재기   진주의 동쪽 월아산 아래 동산촌은 강씨의 세거지이다. 문경공(文景公) 문량공(文良公) 문간공(文簡公) 문(文)자를 가진 세 분의 공(公)이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진주 인재의 반 이상이 월아산 아래에서 태어난다 하니 바로 이곳을 말함이다. 문경공의 아우 집의공(執義公)은 도덕(道德)과 학문(學問)으로 승강원(昇岡院)에 행사하였다. 이분이 여러 지파로 분파된 조상의 한사람이다. 손자 통덕낭(通德郎) 휘(諱) 운(沄)의 후손이 하동, 곤양, 사천 등지에 살고 있는데 그 수가 적지 않다. 그 중 한 지파가 곤양 무고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오랜 세월 동안 십 수 대째 살고 있다.   작년 가을에 종친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재실을 짓자고 뜻을 모았다. 종친 강문중(姜文中) 봉중(奉中) 상중(相中) 등을 시켜서 나에게 현판의 글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내가 비록 글을 못하나 같은 同宗간이라 사양치 못하고 이에 선조의 유래와 후손들의 본(本)의 규모에 대하여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구 한말(韓末)의 호적에 보면 강씨 집안은 곤양으로 들어온 유학자의 집안임을 알 수 있고, 또 여러 장(章)의 교지 중에서 고관대작의 한 분파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세태는 어떠한가. 예절과 교양이 없어진지가 오래 이고, 인간윤리와 강상(綱常)이 땅에 떨어져 있다. 조상을 추모한다고 저토록 거창하고 높은 누각을 지어 현판을 단 재실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하지만 누각의 여기저기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좀이 쓸어 볼품 없이 되지 않도록 후손들이 잘 가꾸고 간수한 재실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오로지 우리 종중(宗中)은 지금 건축을 하였지만 조상님들을 추모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런 일들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재실에서 친족들끼리 화목하고, 조상님들을 추모하며, 진주로부터 발현된 조상님들의 명예를 추락하지 않으려 한 것인 즉 어찌 이 세상의 모범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후손들은 부지런히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재실에 오르면 산수의 아름다움과 아침 저녁의 풍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에 이렇게 적는다.   서기 1976년 병진 삼월 청명절   방계후손 대한민국제헌의원 강달수 지음   김해인 김상연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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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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