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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3. 德厚齋記 ◦소재지 : 곤양면 환덕리 黙山之阡斧封四尺宰樹蔭翳者我九世祖副護軍府君之玄宅也.而無齊宿湢濯之所歷世而憂其未遑焉.歲戊子春子姓咸聚而言曰在乎述事而不局于地盍以崇明齊爲墳菴墳於彼而庵於此者亦有由焉就故居而精靈陟降如在于斯也.且地武間一小峴而近也.於施焉仍舊貫而新其塗墍丙舍扁之曰德厚齋取義於愼終追遠民德歸厚之語而亦以應里名也.盖墳庵之設推樵牧之禁霜露之歸已而乎則猶末也.夫終者人所鮮克而能愼之則始之勤從可推矣遠者人所易忘而能追之則邇之慕庶可知矣 爲雲仍者入其室而仰其楣愼且追遠斯須不弛則人人親親之德油然而厚矣相與勉旃哉謹記顚末以爲德厚齋證實雲爾 戊子 三月 上院 九世孫 鏞憲 謹識

덕후재

덕후재기   묵산의 뫼뿌리에 4척의 규모로 가다듬은 봉분이 있고 주변에 수목이 울창하니 이것이 곧 나의 9세조이신 부호군(副護軍) 부군(府君)의 묘소이다. 재실이 없어서 몇 대로 걱정하여 내려오던 중 무자(戊子)년 봄에 자손들이 모두 모여 의논하였다. 얘기의 주된 내용은 “재실을 짓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지세(地勢)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였다. 재실을 지어 밝은 제사를 올려야 되지 않겠는가. 묘소는 저쪽에 있는데 재실을 이쪽에 짓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옛날부터 오랫동안 거처하던 곳에 재실을 짓는 이유는 여기에 정령(精靈)이 내려와 계심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소와의 거리도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가깝다. 그래서 공사를 시작하되 옛것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것은 고치고 바르고 칠하여 재(齋)의 이름을 덕후재라 하였다. 덕후라는 이름은 신종추원(愼終追遠)하면 민덕(民德)이 귀후(歸厚)라는 말에서 그 뜻을 딴 것이고, 마을 이름도 이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재실을 지을 때에는 나무를 하거나 가축을 치는 일은 금하고, 서리와 이슬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겠느냐. 무릇 죽음(終)을 당하여 선거상(善居喪)하기 어려우나 능히 삼가한 즉 생전의 효행(孝行)을 알 것이요. 먼 조상(祖上)은 잊혀지기 쉬우나 능히 추모하니 가까운 부조(父祖)의 사모(思慕)를 알겠도다. 후손된 자는 이 재실에 들어 현판을 보고 조상(祖上)을 추모하는 정성이 조금도 해이하지 아니하면 사람마다 조상(祖上)을 추모하는 덕이 유연히 두텁게 될 것이다. 서로 힘 쓸진저 삼가 이 모든 것을 기록하여 덕후재의 실적으로 증거한다.   무자년 삼월 상순   구세손 용헌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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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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