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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석조나한좌상(左), 석조여래좌상(右)

3. 면내 사찰

사찰명건립연대소재지주지성명비고
보안암1907.곤양면 무고리 43번지학천스님조계종
용화사 1969. 3. 19곤양면 대진리 538번지송봉애법화종
선회사1998. 5.곤양면 맥사리 32번지김정산
백련사2001. 6.곤양면 중항리 563번지정월스님해동종파
도완사1993.곤양면 흥사리 562-1번지일도각천일붕선교종
① 보안암 석굴(普安庵 石窟:유형문화재 제39호) ◦위 치 : 곤양면 무고리 43번지 ◦설립년도 : 고려시대 후기 ~ 조선시대 초기 ◦종 파 : 조계종 ◦면 적 : 법당:1, 석굴:1, 칠성각:1, 요사ㆍ후원각:1 ◦역대주지 스님 : ㆍ초대:본공스님 ㆍ2대:선행스님 ㆍ3대:도완스님 ㆍ4대:본현스님 ㆍ5대:성호스님 ㆍ6대:학천스님

◦연 혁 (석 굴 내)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무고리 소재. 다솔사 보안암 경내에 있는 석굴.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9호. 고려시대말에서부터 조선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형은 판상(板狀)의 사암질 활석을 단층식으로 쌓아올린 분묘형태이며, 평면은 방형이다. 석굴의 입구에는 ‘미륵전(彌勒殿)’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목조전실(木造前室)을 지나서 2m정도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석실이 있다. 석실규모는 동서 2.9m, 남북 3.5m, 높이 2.45m인데, 중앙에 자연석을 대좌로 하여 결가부좌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안치 되어 있다. 이 본존의 뒤쪽 좌우에는 각 8구의 석조나한좌상(石造羅漢坐像)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석굴은 인공으로 조성한 것으로 규모나 평면형태, 봉안한 불상 등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경주 석굴암과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이 석굴은 반대편 쪽에 있는 하동군 북천면 이맹산의 석굴사원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慶尙南道誌(慶尙南道, 1978), 泗川普安庵石窟과 河東理盲窟(黃壽永, 東國史學 9, 10, 1966).   짧은 곡조를 연주하는 일 또는 그 악기, 피리나 대금(젓대)같은 관악기의 경우 본곡을 제대로 연주하기에 앞서 취법(吹法)의 조절과 지공(指孔)의 적부 등을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시취(試吹)가 있으며, 거문고나 가야금 등 현악기의 경우에는 일단 조현(調絃)을 끝내고 줄이 고른지의 여부와 탄법과 안현(按絃)의 요체를 위한 간단한 가락의 시주(試奏)가 있다.   불교가 전래되기 시작하여 신라가 삼국(三國)을 통일하기까지의 삼국에서는 이상과 같은 불교의 활동이 중국, 일본과 연계되면서 진행되어 왔다.   하나 주목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 가락국(駕洛國) 초기에 허황후(許皇后)가 탑상(塔像)과 함께 들어왔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이다. 경남의 남해(南海), 서해안(西海岸) 일대에서는 배를 타고 들어온 불교에 대한 전설(傳說) 등이 전하여 오고 있다. 사서(史書)에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해로(海路)를 타고 들어온 불교가 있었으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테면 김해(金海)를 중심(中心)으로 가락국(駕洛國)의 남방불교(南方佛敎) 전래설화(傳來說話)는 가락국의 불교가 비록 정사(正史)에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김해(金海) 및 사천지방(泗川地方)의 전설로서는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예로서 가락국의 시조(始祖)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십왕자중(十王子中) 칠왕자(七王子)가 그들의 외삼촌(外三寸) 보옥선인(寶玉仙人)을 따라 속세의 인연을 끊고 가야산(伽倻山)으로 입산(入山)하여 삼년간 수도하다가 의령의 수도산(修道山)과 사천(泗川)의 와룡산(臥龍山), 귀용산(歸龍山, 이때 귀룡사(龜龍寺)를 창건했다 함)을 거쳐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운상원(雲上院)을 세우고 좌선(坐禪)한지 2년 후에 가락국 시조 62년, 신라 파사왕(婆娑王) 24년 음 8월 15일에 오묘한 진여(眞如)를 함께 대오(大悟)해 모두 성불(成佛)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통일신라(統一新羅)의 후기에 가서 선종(禪宗)이 들어온 뒤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선종은 기성 불교의 사상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수양하고 진리를 깨닫는다는 새로운 불교이므로 선종은 사원의 터를 인적이 희소한 심산유곡에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사원의 유적은 대체로 깊은 산중에 한정된 감이 있다.   이러한 사원(址)에는 다소간 그 당시의 문화재(文化財)를 전하고 있으나 목조건물(木造建物)은 고려시대 이전의 것이 태무한데 비하여 석조물(石造物)은 각종 각 시대의 우수한 작품이 적지 아니하다.   끝으로 건축구조를 대표하는 공포(栱包)의 유형에서 보면, 전기(前期)는 화두아형(花斗牙形)의 핵심포계(核心包系)가, 후기는 다포계(多包系)의 익공계(翼工系)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이다.   다포(多包), 익공계(翼工系)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는 중요 건축물에 채택되는 빈도에 따라 다포계시대(多包系時代)와 익공계시대(翼工系時代)로 나눌 수 있다. 다포계시대(多包系時代)는 고려 충렬왕대로부터 임진란 이전까지이고, 익공계(翼工系)는 임진왜란 이후 대한제국까지 성행하였다.

용 화 사

② 용화사(龍華寺) 용 화 사 ◦위 치 : 곤양면 대진리 538번지 ◦설립연도 : 1969. 3. 19 ◦종 파 : 사단법인 대한불교 법화종 ◦연 혁 ㆍ1969. 3. 19 宋奉愛(佛名 普賢心)보살이 창건 ㆍ1970. 법당 낙성 ㆍ현 당우로는 대웅전, 용화전, 삼성각, 후원 요사 2동 ◦역대 주지스님 ㆍ초대:蔡東見 ㆍ2대:白靑山 ㆍ3대:趙法性 ㆍ4대:金奉俊 ㆍ5대:鄭成覺 ㆍ6대:李本智 ◦역대 주석하신 스님 그간 수많은 운수납자들이 수행정진 했으나 대표적 스님은 蔡東見, 河成春, 白靑山, 趙法性, 金奉俊, 鄭成覺 ◦기 타 본 용화사는 기도영험 도량으로 수많은 불자들이 기도 정진하고 있음.

선 회 사

③ 선회사(善廻寺) ◦위 치 : 곤양면 맥사리 32번지 ◦설립년도 : 1998년 5월 ◦연 혁 : 1998년 5월 홍금자 창건 ◦면 적 :ㆍ대지 : 84평 ㆍ법당 : 20평 ㆍ요사 : 35평 ◦역대주지스님 ㆍ초대 : 만호스님 ㆍ2대 : 해룡스님 ㆍ현 : 김정산 주석스님 ◦기 타 본 선회사는 창건 년대는 얼마 되지 않으나 기도 영험의 도량으로 많은 불자들이 모여 들어 기도 정진하고 있음.

백 련 사

④ 백련사(白蓮寺) ◦위 치 :곤양면 중항리 563번지 ◦설립년도 :2001. 6. ◦종 파 :해동종파 ◦연 혁 :2001. 6. (유계식:정월스님 창건) ◦면 적 : 대지 300평, 법당 20평, 요사 30평 ◦역대 주지 스님 : · 초대:정월스님(현재) ◦기 타 2001년 6월에 정월 초대스님께서 창건, 연대가 오래지 않아 아직 많은 신도는 없으나 점차 포교를 넓혀가고 있으며 경내 요사채 등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있어 불자님들이 모여들고 있다.

도 완 사

⑤ 도완사(道完寺) 도 완 사 ◦위 치 : 곤양면 흥사리 562-1 ◦설립연도 : 1993년(불기2537년)에 불사 1994. 8. 10 등록 필 ◦가입종단 : 일붕 선교종 (대한불교, 재단법인) ◦연 혁 창건주 도완(道完)스님이 진주 연화사 주지로 주석하다가 퇴임한 후 진주 신도들의 권유로 진주 근교로 본사찰을 불기 2537년(1993)에 불사를 시작하여 다음해 1994년 8월 10일 등록을 필하여 불사를 완료. 그후 주지직을 봉직함. 건강이 여의치 못해 2003년 3월 3일 현재 주지인 일도각천(日衜覺天)스님이 위임 현재에 이른다. ◦역대주지스님 ㆍ초대 : 도완(道完)스님 ㆍ2대 : 일도각천(日衜覺天)스님 ◦면적 및 규모 ㆍ300평 법당(원통전) 1동, 요사채 2동 ㆍ현관문 : 반야문(般若門) ㆍ천하황불유묵답(天下皇佛有黙答) 지상옥선무언몰(地上玉仙無語問)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진불(眞佛)을 봉달하기 위하여 이 소명을 천명(天命)으로 여기고 이 불사(佛事)를 성취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수행정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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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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