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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2. 성황제(城隍祭)   성황이라는 이름 뒤에 사(祠), 당(堂), 단(壇)의 글자가 따라 붙는데 사(祠)는 제의를 지내는 사당일 것이고, 당(堂)은 제의를 지내는 사당의 건물이나 어떤 가식적인 것(나무 혹은 거리 등)을 의미하고 단(壇)은 어떤 재료로 만든 축조물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 등의 공공의 기록이나 군, 현, 읍지 등의 기록에도 이를 혼용하고 있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나 성황제는 앞의 사, 당, 단에서 국가 제의를 지내던 곳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으며 사천지역의 성황제는 지금의 정동면 예수리 성황산성에 조그마한 성황사를 짓고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는 거수(巨樹)가 있는 각 마을에서는 일정한 날에 나무 주위를 정결히 하고 5색의 실과 천을 둘러 안위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당제(堂祭)는 마을의 공동의식을 굳히면서 덕망 있는 사람이 맡게 되고 정해진 제주는 목욕재계하고 7일의 금기를 지켜온 부락민이 모인 가운데 실과와 소머리나 돼지머리를 차려 놓고 정중히 축문을 읽어 동리의 한해 안복(安福)을 비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음복을 하고 다같이 음식을 들며 환담을 나누는가 하면 농악놀이를 곁들이는 때도 있다.   이렇게 성황당에 모셔지는 신은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山神)을 뜻하는 것이다. 산신은 상과 벌이 분명한 것으로 생각하고 산신을 진심으로 의경(畏敬)하는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의 기록에 보면 단묘(壇廟)나 신패(神牌)를 지방에서 마음대로 글을 써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정비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성황사 유래는 삼국시대부터 각 읍에 설단(設壇)하여 지방의 수호신으로서 제사를 지냈고, 고려 고종 23년(1236)에 몽고병이 온양에서 패함에 따라 그 지방의 성황신 음덕이라 하여 국가에서 제사 지내게 하고 있다.   조선 태조 원년(1312)에 각 읍에 성황신을 모셔 수령이 매년 춘추에 제를 지내게 하였는데 성황당은 곤양읍지에 군(곤양) 남쪽 2리 지점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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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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