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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2절 이야기 1. 오봉산(五峰山)

오봉산

  음양오행의 관점으로 세상사를 살펴보던 동양적 관점에서 목화토금수로 불리는 오행은 중요하다. 특히 한 지역에 목화토금수의 형국이 있는 산은 전 세계를 둘러보아도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상정부락 건너편 옛 향교터 뒷산으로 상정에서 보면 산봉우리가 5개로 되어 있어 곤양에는 목화토금수의 형국을 가진 산이라 하여 이 산을 오봉산이라 한다. 곤양은 고려 때에 곤명현으로 불리워진 이래 지명에 곤이 따라 붙는다. 세종 때 곤명의 ‘곤’자와 남해의 ‘남’자를 따서 곤남군으로 하다가, 금양부곡을 합치면서 금양의 ‘양’자를 따서 지금처럼 ‘곤양’이 되었다. 따라서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지명을 보자면 곤양보다는 곤명이라는 지명을 뜻풀이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곤(昆)’은 맏이를 의미하며, ‘명(明)’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의 기운이 한데 모인 힘찬 밝음이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곤양은 조선초기부터 경제ㆍ군사적 요충지였고, 풍수지리에서 볼 때 왕성한 지기로 말미암아 제왕이 출몰할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봉산을 중심으로 만군을 거느릴 훌륭한 인물이 출현할 지역이라 한다. 오봉산은 백두대간의 정기가 절묘하게 응결되어 있는 곳으로 임금의 자리보다 더 높은 천자황제가 태어날 곳이라고 한다. 이 기(氣)를 받으려는 왕실의 관심이 컸으며, 일제는 그 기를 꺾기 위하여 봉명산 일대(다솔사에서 동북쪽 근방 500m 어느 지점 이라고 전하여짐)에 커다란 못을 파서 쇳물를 끓여 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길이 없다.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하여 일제가 다른 지역에는 산맥의 혈에 해당되는 곳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하지만, 곤양땅에는 쇳물을 녹여 부었다는 전언(傳言)이 있는데, 황당하게 생각하면서도 좀 깨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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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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