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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1절 곤양의 전설 1. 이명산(理明山)의 전설(傳說)

이명산

  이명산(理明山)은 우리 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읍성(邑城)에서 서쪽 20리에 있고, 진교면 북천면 등 3개 면을 경계하여 남쪽으로는 멀리 남해 바다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지리산(智異山)과 응대(應待)하여 그 기상(氣像)을 자랑한다. 계곡은 무고천(舞鼓川)의 원류(源流)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일이 없고 흰디미ㆍ삼밭골ㆍ고사리재 등 명소(名所)가 있다. 그리고 이 산을 옛 통일신라이후 동경(慶州)을 비보(裨補)하는 영산(靈山)으로 칭하며, 그 이후 이런 전설이 생긴듯하다.   이명산(理明山)의 주봉(主峰)을 달구봉이라 하는데 여기 깊은 못이 있었고, 이 못에 득천(得天) 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수 십 년을 공을 드려도 용이 되어 득천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못된 이무기는 승천하지 못한 분풀이로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심술이 나면 물 위로 목을 길게 내밀어 방향을 잡고 무서운 독을 내뿜었다. 그러면 그 방향의 사람이 갑자기 맹인(盲人)이 되곤 하여 이 산을 이맹산(理盲山)이라 부르게 되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속수무책으로 한 해 한 해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명산 주위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어 이무기에게 제물도 바치고 때로는 처녀를 제물로 바치기도 했지만 그 횡포는 변함이 없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올해도 어떤 피해가 있으려나 전전긍긍하며 근심에 잠겨있던 어느 날 도승 한 분이 탁발을 왔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불심이 깊은 사람들은 보시를 했지만 마을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대부분 수심이 가득 하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시주 나온 어느 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온 동네사람들이 수심이 가득하니 필유곡절이 있을 듯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사오이까 하는 스님의 물음에 그 부인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예, 스님 다름이 아니옵고 저기 보이는 저 이맹산(理盲山)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그 곳에 사는 이무기가 고개를 쳐들어 독을 뿜어내면 그 방향의 마을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님이 되고마니 언제 고개를 내밀어 독을 뿜을지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스님은 마음속으로 고얀 미물이로다. 한갓 미물이 어찌 불심 깊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여,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스님은 어느새 모여 있는 마을사람들을 둘러보며 어렵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은 하는 스님의 말에 마을사람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스님은 정색을 하고 이무기를 물리칠 방법을 알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몇 명 안되는 주민들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여 차근차근 준비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고개를 쳐들어 동경(경주)을 행하여 강한 독기를 뿜었다. 공교롭게도 공주의 눈이 멀게 되었다. 임금님은 당황한 나머지 전의를 불러 치료를 시켰으나 조금도 치유될 기미가 없자 전국에 방(傍)을 붙여 공주의 눈을 뜨게 한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 때 한 도사가 아뢰기를 동경의 곤방(坤方)에 이맹산(理盲山)이란 산이 있습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이무기의 소행 같다고 아뢰었다. 임금님은 즉시 많은 신하들을 곤방(坤方)으로 보내 이맹산(理盲山)을 찾아보니 산정에 깊은 못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하들은 도승이 가르쳐 준 대로 돌(火鐵石)을 불에 달구어 못에 집어넣을 것을 결정짓고 인근주민을 총동원하여 수 십 대의 풍구를 산봉우리 위에 설치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을 달구어 계속 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7일 만에 물의 수온이 올라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못의 물결이 요동쳤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풍운과 폭우를 동반하여 용은 승천을 시도하려고 물 밖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무기는 승천을 하지 못하고 남쪽의 깊은 못을 찾아 잠적(潛跡)했는데 이곳이 민다리(辰橋)쪽의 깊은 못이라고 한다. 그 후 이무기는 남해(南海)의 해룡(海龍)이 되었다 하고 이무기가 이맹산(理盲山)에서 떠난 뒤에는 맹인이 생기지 않고 공주도 눈을 떠서 광명(光明)을 찾았다 하여 이맹산(理盲山)을 이명산(理明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이명산 달구봉에는 구운돌과 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이 전설은 하동군지와 진교면지에서 발췌하였음.)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하동현 산천(河東縣 山川)편에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다음과 같은 글귀가 실려 있다. 理盲山右在東二十里 俗伝東京裨補山頂古有龍沼以此東京人多盲人極炳焉以火鐵石沈池龍徒昆陽辰梯 下梁淵此後人不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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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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