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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1절 의식주(衣食住)의 변천(變遷) 1. 의생활(衣生活)   이 고장도 지역적(地域的)인 특성(特性)보다 전통적(傳統的)인 한국 복식(服飾)을 하고 생활(生活)하였다. 조선말기(朝鮮末期) 개화전(開化前)까지는 한복(韓服)을 주(主)로 입었고, 그 후(後)로는 양복(洋服)을 입게 되었으며, 차차 간소(簡素)하고 편(便)한 복장(服裝)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명절(名節) 때나 혼상제(婚喪祭) 등 의식(儀式)에는 전통의상(傳統衣裳)의 한복을 입는다.   의복문화(衣服文化)는 신분(身分), 계절(季節), 성별(性別), 노소(老少), 장소(場所) 등에 따라 복식(服飾)이 다르게 나타난다.   관복(官服)은 신분별(身分別)로 자색(紫色), 적색(赤色)이 많고 그 다음으로 청색(靑色), 황색(黃色), 백색(白色)이었다. 서민층(庶民層)은 색채(色彩) 옷을 금(禁)하고 백색계통(白色系統)의 의복(衣服)을 입게 했다. 백의숭상의식(白衣崇尙意識)이 유래(由來)된 것도 여기서 시작(始作)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전통한복(傳統韓服)과 생활평상복(生活平常服)의 종류(種類)는 분류(分類)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다음은 한복의 종류(種類)를 살펴본다.   1) 남자복장(男子服裝)   ① 저고리 : 계절에 따라 겹저고리, 홑저고리를 입는데 여름 옷감은 삼베, 모시, 옥양목으로 짓고 겨울 옷감은 명주와 무명으로 만든다.   ② 바지 : 여름에는 삼ㆍ모시 안동포 등으로 만든 홑바지를 입었고, 겨울에는 두꺼운 천에 솜을 넣어 겹바지를 지어 입었다.   ③ 대님 : 천으로 띠를 접어 바지 발목을 돌려 매는 것으로 바지 색깔을 천으로 접어 만들었다.   ④ 마고자 : 조끼 위에 입는 것인데 고급 천으로 만들며 화려한 단추를 단다. 마고자는 외출용(外出用) 정장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을 중시하는 곳에는 입고 가서는 안 된다.   ⑤ 조끼 : 저고리 위에 입는 것으로 옷감이 고급스럽고 소매가 없으며 주머니를 몇 개 단다.   ⑥ 두루마기 : 외출용 정장으로 여름에는 모시로 겨울에는 무명, 옥양목으로 지었으나 근래는 모직류나 실크로 만들어 입는다.   2) 여자복장(女子服裝)   ① 저고리 : 홑옷과 겹옷을 계절 따라 지어 입으며 옷감은 모시, 안동포, 무명, 옥양목, 명주 등이었는데 근래는 화려한 모양의 비단으로 만든다.   ② 치마 : 치마는 통치마와 풀치마가 있는데, 통치마는 생활복으로 외출할 때는 별로 입지 않는다. 재료는 저고리와 같다.   ③ 속곳 : 속속곳과 단속곳이 있는데 속속곳은 제일 안에 입는 옷이고 단속곳은 치마 속에 입는데, 요즈음은 단속곳은 보기 힘들고 속치마를 주로 입는다.   ④ 버선 : 남녀 모두 신었고 무명, 광목, 옥양목으로 만들어 신었다.   3) 의례복(儀禮服)   ① 혼례복(婚禮服) : 전통혼례복(傳統婚禮服)으로 신랑은 머리에 사모(紗帽)를 쓰고, 적삼과 바지 위에 쌍학(雙鶴)의 흉배(胸背)가 달린 관복(官服)의 저고리에 요대(腰帶)를 하고 옛날은 목화(木靴)를 신었다가 뒤에 가죽으로 버선 같은 신을 만들어 신었다.   신부는 머리에 칠보단장(七寶丹粧)의 족두리를 쓰고 댕기로 장식하여 비녀를 꽂는다. 치마 저고리는 원색에 가까운 색깔 옷을 입고, 그 위에 원삼(圓衫)이나 활옷을 입었다. 신은 코에 예쁜 단장을 한 갓신을 신었다. 예복 색깔은 신랑은 청색계통, 신부는 홍색계통이 보통이었다.   ② 상례복(喪禮服) : 상례복은 지금도 전통적(傳統的)인 복식(服飾)이 지켜지고 있다. 남자상복은 굵은 삼베로 짠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중단(中單)제복, 요질(腰紩), 수질(首絰, 노끈), 굴건(屈巾), 상장(喪杖), 대님, 행전, 버선, 엄, 짚신 등으로 구분하는데 요즈음은 차츰 간소화되어가고 있다. 여자상복은 삼베로 된 치마, 저고리, 제복, 요질(腰紩), 수질(首絰, 삼베끈), 상장(喪杖), 버선, 엄짚신 등으로 구분한다.   요질(腰紩)은 허리에 두르는 것으로 남상(男喪)은 왼 쪽으로 땋아서 만들고, 여상(女喪)은 짚에 삼을 감아 오른쪽으로 땋아 만든다.   근래에 와서는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백일상(百日喪)을 많이 하고, 상복도 두루마기나 평소 복에 두건이나 상장(喪章)을 해서 상복을 대신하는 집안이 많고 옛 법도대로 소대상(小大祥) 삼년을 지내는 집은 드물다.   4) 베짜기   옷감의 원료(原料)로는 목화, 삼, 모시를 밭에서 직접생산(直接生産)하여 실을 뽑아 무명베 외에도 삼베, 모시베를 짰는데 우리 곤양 지역도 길쌈을 많이 하여 농가소득을 올렸으나, 지금은 화학섬유 등 다양한 옷감 자료가 나와 그 때 쓰던 연모들만 농가집 헛간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동물성 옷감은 모직 명주(明紬)가 있었는데 이것도 농가에서 누에를 쳐서 고치를 생산하여 실을 뽑아 명주를 짰다.   ① 삼베   ㉮ 삼을 논밭에 심어 2m가량 자라면 잎을 추려내고 단을 묶어 삼 솥에 넣어 적당히 삶아 꺼내서 식기 전에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한다.   ㉯ 삼껍질을 잘게 찢어야 되므로 일단 말린 삼을 다시 물에 불려 실낱 크기로 찢는다.   그 다음은 삼 머리 쪽을 삼톱으로 훑어 살을 빼고, 삼을 삼는데 이것이 곧 삼을 잇는 것이다. 삼을 한 올 한 올 양끝을 맞추어 허벅지에 대고 비벼서 연결하여 광주리에 쌓아 담는다.   ㉰ 삼을 삼아서 말린 올을 돌껏에 끼위 타래를 만들어 그것을 양잿물을 넣고 삶아 색깔을 내어 건조시킨다.   ㉱ 그 다음 일은 베날기 작업인데 올의 굵기에 따라 몇 새라는 단위로 굵은 베는 5ㆍ6새부터 가는 베는 10ㆍ11새까지 날아서, 베의 길이는 필(匹)이란 단위로 실을 나는데 광주리나 소쿠리에 담긴 실타래에 굵은 모래를 얹어 헝클어지지 않고 잘 풀려 나오도록 준비한 다음 마당에 가로와 세로에 막대를 박아 고정시켜 놓고 실을 거는데 10개의 실무더기에서 날틀을 통해서 나온 10올씩 8번을 쪼면 한 새가 되니 새에 맞추어 날기 작업을 한다.   ㉲ 베매기 : 실에 풀칠을 하고 실이 엉키지 않도록 가지런히 하는 작업(作業)으로, 실을 한 올 한 올 바디에 끼어 베의 날줄이 되게 솔로 빗고 풀칠하면서 왕겨를 태워 만든 겻불에 말려가며 도투마리에 감는 일이다.   ㉳ 베짜기 : 베틀을 설치하는데 부품 이름을 보면 베틀뼈대가 되는 기둥다리가 있고 용두머리, 눈섭대, 끌신, 도투마리, 잉앳대, 부티, 북, 바디, 배빗대 등이 있다. 베틀에 날줄을 얹어 놓고 북에 씨줄이 될 실꾸리를 담아 잘 풀려나도록 한 것을 북이 좌우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베가 짜진다.   ② 무명베   ㉮ 원료생산 : 무명의 원료는 목화인데 봄에 씨앗을 오줌에 담궈 재와 섞어 보리밭 고랑 사이에 뿌린다. 8월에 목화 꽃이 피고 다래가 열어 목화가 된다. 그 목화를 말려 “쐐기”에 앗아 씨앗을 빼고 솜을 타는데 수작업으로 하다가 뒤에 기계가 나와 제면 타면을 하였다.   ㉯ 실잣기 : 목화를 솜으로 만든 다음 물레를 돌려 가락을 회전시키면서 실을 잣는다. 그 실을 날고 베매기 하는 것은 삼베 짜는 거와 같이 하여 무명베가 된다.   5) 의복(衣服) 만들기   오늘 날은 기계 재봉으로 옷을 깁고 대량생산(大量生産)을 하는데 옛날부터 우리고장의 옷 만드는 것은 손바느질에 의존하고 살았다. 손바느질 할 때 바늘을 사용하는데 세침(細針), 중침(中針), 대침(大針)이 있어 명주옷을 기울 때는 세침(細針), 무명ㆍ광목 옷은 중침(中針)으로, 삼베옷이나 이불은 대침(大針)을 썼다. 꿰매는 방법(方法)도 시치고 감치고 누비는 등 다양한 기법(技法)이 있다.   6) 빨래   애벌빨래 두벌빨래가 있는데 애벌빨래는 한 번만 빨아서 말리는 것을 말하고, 두벌빨래는 애벌빤 후 양잿물에 삶아 다시 빠는 것을 말한다. 대개 빨래는 비누로 치대고 돌 위에 얹어 방망이질을 한 후 물에 헹군 뒤에 짜서 말린다. 마른 옷에 풀을 먹이는데 풀은 밀가루풀과 밥풀이 있었다. 밀가루풀은 무명, 삼베에 먹이고, 밥풀은 명주나 모시옷에 먹였다. 빨래가 거의 마르면 손질하고 밟아서 다듬이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주름을 펴고 고와지게 한다. 그런 다음 이슬을 맞히거나 물을 뿜어 축인 뒤에 다림질은 한다. 다림질은 주로 다리미에 숯불을 피워 다리거나 사기사발로 문질러 구김살을 펴기도 한다.   7) 갓   개화기(開化期)까지도 사대부(士大夫)나 양반 평민(平民)할 것 없이 다 갓을 썼는데 예식(禮式) 때 또는 외출(外出)할 때는 꼭 썼다. 그래서 갓은 갓집을 만들어 천정에 매달아 보관했으며 단발령 이후 갓이 점점 사라졌다. 갓은 신분(身分)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국상(國喪)이나 부모상(父母喪) 때에는 백립(白笠)과 상립(喪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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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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