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4. 곤양산수가와 해동초부   해동초부 정재화(鄭再和:1929~1986)는 곤양면 흥사리에서 착실히 농사에 전념하면서 틈틈이 서예와 역사 지식을 습득하여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곤양산수가와 사천팔경을 남겼으며, 향토에 버려져 있는 돌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산골에 묻혀있는 매향비(국가지정 보물 제614호)를 발굴하여 지방 문화진흥에 공이 컸으며, 서체에서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였으나 이순(耳順)의 나이로 운명하시게 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1) 곤양산수가(昆陽山水歌) 春陽抱華하여 春光先到 昆陽하니 嚴 姜 陸이 始居하고 丙午雙龍廻入前에 諸方이 明堂이라(제방) 善德女王 심은 牧丹 探花蜂蝶亂舞하고 (나비嶝에 滿開하고) (목단) 智異山猪牙方하니 朱雀은 渡江飛 古洞浦에 氣盡했네 (아방, 고동포) 男負女戴儉丁하니 日益漸增加利하고 三十餘洞이 還德이라 (검정, 본촌, 환덕) 孔子廟前에 南山屛 塘川에 魚遊하며 (당천 어류) 蒲谷이 細流大津되어 門倉平野灌漑하고 後田玉谷豊登하여 三洞老幼가 抱腹歡舞 (포곡, 대진, 후전, 옥곡, 삼동) 東泉水 길어다가 上鼎磬에 밥을 짓고 水洞의 甘露井水 松亭栢實茶 끓여 觀音佛前 供養하여 바닷가에 香을 묻고 四千一百人 合掌하여 極樂往生 發願하니 文達寺 夜半鐘聲 兜率天이 響傳하네 (동천, 상정, 수동, 송정) 三溪가 合流佳湖되고 群龍이 雲集 脈社이던가 (가호, 맥사) 小洞庭 晋陽湖水 七十里 굽이굽이 塔骸만 남아 塔洞인가 (탑동) 牛峙의 늙은 암소 질매는 벗어 鞍島에 두고 占卜에 問卜하니 彼岸草田 바라보고 臥峙에 누웠구나 (우티, 안도, 와티, 점복) 仙人讀書 郭嶝麓에 晝耕夜讀 必興士요 美風良俗이 滿甲士라 (흥사, 갑사, 흥속) 九秋鴈天寒月夜에 石門을 굳게 닫고 經世濟民 度量하니 黙黙實行 黙實이면 南門外震舞鼓聲하고 仕洞 城內가 安逸하니 錦上에 加花로다. (한월, 석문, 제민, 묵실, 남문외리, 무고, 사동, 성내, 가화) 海東樵夫 鄭再和 作詞 ※ 무고, 맥사가 본면으로 편입된 해가 1983년 2월 15일이므로, 작고(作故)하시기 직전에 작사한 것으로 봄. (註解) 봄볕이 먼저 드는 양지(陽地)바른 곳이라 하여 곤양(昆陽)이라 칭(稱)하였고 엄씨(嚴氏), 강씨(姜氏), 육씨(陸氏), 삼씨성(三氏姓)이 이 곳에 먼저 정주(定住)했도다.(村老들의 傳言에 의함.) 남쪽에서 두 줄기 산맥(山脈)이 제방(諸方) 마을 뒤로 돌아들어와 모든 방위(方位)가 명당(明堂)자리를 이루고 “생하동(生河東), 사곤양(死昆陽)이라”하여 곤양에는 명당이 많았다네.(하동땅에 살다가 죽으면 곤양땅에 묻히라는 뜻으로 제방뒷산에는 소위(所謂) 금반옥저격(金盤玉箸格)으로 진사(進士)가 구장(九張)이나 배출(輩出)된 강씨(姜氏) 묘(墓)를 형성(形成)한 것이 이를 입증(立證)함.) 당태종(唐太宗)이 목단(牧丹) 씨앗을 보내온 것을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제일 먼저 시식(試植)하고 목단마을 나비등에 꽃이 만발(滿發)하다. 지리산세(智異山勢)가 범이 치아(齒牙)를 드러낸 사나운 형상으로 뻗어 내려와 성지(聖知)(玉童子 道師) 목을 거쳐 고동포에서 맥(脈)이 서려있는 이른바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의 형상이며 주작이 강을 건너 해저(海底)로 연맥(連脈)하여 통영(統營) 원문(院門)에 이런 것을 비유(比喩)하는 것으로 이는 풍수지리가(風水地理家)들의 통설(通說)로 간주하고 있음.(牙方, 古洞浦마을) 남녀(男女) 장정(壯丁)들이 근검(勤儉)하니 나날이 윤택(潤澤), 부유(富裕)해져서 본(本) 면(面) 30여 동에 덕(德)이 돌아오도다.(儉丁, 本村마을) 곤양(昆陽) 향교(鄕校) 앞 남산(南山)은 병풍(屛風)의 띠를 이루고 한가롭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당천(塘川)과 어류(魚遊)마을이 되었네. 자포실 저수지와 봇물 등을 이용(利用)하여 서포(西浦) 문창(門倉)이 들까지 관개(灌漑)하고(蒲谷, 大津마을) 뒷밭과 기름진 옥골들에 풍년이 들어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하고 上, 中, 下 동에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춤추고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도다.(後田, 玉谷, 三洞마을) 동쪽의 깨끗한 물로 石釜(돌솥)에 밥을 짓고 감로수(甘露水)로 松柏實(잣차)를 다려 자비(慈悲)로운 불전(佛前)에 공양(供養)하며 흥사리 산48번지에 향(香)을 묻어 4,100인이 결계(結契)하여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발원(發願)하니 문달사(文達寺)의 한밤 중 종소리 도솔천(兜率天)에 울려 퍼지도다.(東川, 上鼎, 水洞, 松亭마을) 매향비(埋香碑)와 관련하여 절의 규모와 신도(信徒)의 수가 대단했던 것으로 짐작됨. 가호(佳湖) 위 진양군(晋陽郡) 나동면(奈洞面) 삼골 또는 삼가래 동에서 발원(發源)된 물이 가호에서 합류(合流)하여 그 물은 다시 다솔사 뒤 세종 태봉(胎封)을 위시(爲始)하여 대소(大小)산맥의 기운(氣運)이 맥사(脈社)에 이르러 총 집결(集結)되어 있으므로 맥사라고 시칭(始稱)했으리라 추정(推定)됨.(佳湖, 脈社마을) 가화천(加花川) 70리와(진양호를 중국(中國) 후남성 북쪽에 있는 동정호(洞庭湖) 700리에 비유했음) 탑동(塔洞)에는 석탑(石塔) 2, 3기(基)의 잔해(殘骸)가 현존(現存)하고 있음.(塔洞마을) 우티(牛峙)의 늙은 암소가 꾀가 많아 질매, 멍에는 질매섬에 벗어 던지고 사남면(泗南面) 초전(草田) 풀밭을 가고 싶어 했지만 사천만(泗川灣)이 가로질러 할 수 없이 臥峙(누운티)에 누워 있다고 점복(占卜)개에서 점장(占匠)이에게 점을 치더라.(牛峙, 鞍島, 臥峙, 占卜마을) 선인(仙人)이 독서(讀書)하는 각 명지(明地)와 조선 팔명지(八明地)의 하나인 곽가등(郭家嶝) 밑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니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새로 생겨나 비옥가봉(比屋可封:나라에 어진 사람이 많아 모두에게 벼슬을 내릴만 함)이 지금도 있을 법 하구나.(興士마을) 추(秋) 9월 고요한 밤에 잡념(雜念)을 떨쳐내고 오직 살기 좋은 내 고장을 이룩하려는 구상(構想)을 묵묵(黙黙)히 실천(實踐)하여 민관(民官)이 하나가 되어 안일(安逸)한 생활을 함께 바라는 태평가(太平歌)의 북소리가 먼 곳까지 진동(震動)해 오니 이 어찌 금상(錦上)에 가화격(加花格)이 아니겠는가.(寒月, 石門, 濟民, 黙實, 南門外里, 舞鼓, 仕洞, 城內里, 加花 등 마을)   2) 사천 팔경(泗川 八景) 정재화 작사(鄭再和 作詞) 洙陽山城에 日光正東하니 旭旭光彩 昆陽하고 和氣明朗 昆明이라 臥龍이 得珠上天하니 利見大人 龍見하고 滄濶한 泗川江水 武陵桃源 저 언덕에 낚시하는 늙은이여 屈原事※를 생각느뇨 文王을 기다려온 快哉亨秋枰上 雲集한 半仙稀老 鳥鷺爭에 餘念없고 盡入亭中萬里風하니 詩人墨客 滿場일세 기름진 泗南 平野 禾黍由由 擊壤歌요 牧童의 草笛소리 六畜이 光盛杻洞인가 거신(蚓)嶝 泗洲벌에 保國鳥 알을 품어 機鳥抱卵云 하는가 於焉日沒 西浦하니 燈火에 經典耽讀하리 (※屈原事 : 전국시대 초나라 양왕의 미움을 받아 멱라수(泪羅水)에 빠져 자살한 고사) 수양산성(현 사천성)에 햇빛을 비추는 정동이니, 아침 해가 광채를 띤 곤양하고, 화목한 기운이 명랑한 곤명이라. 와룡이 여의주를 얻어 하늘에 올라가니, 덕이 높은 군자가 많은 용현하고, 넓고 기름진 사천 경개, 무릉도원 저 언덕에 낚시하는 저 늙은이 굴원사를 생각는가. 성군 문왕을 기다리며, 쾌재정의 가을 평상 위에 운집한 반선 노인은 바둑놀이에 여념이 없고, 정자에는 만리풍이 불어오니, 시인묵객 또한 가득 하네. 기름진 사남 평야, 오곡백과 무성하여 골골 마다 격양가(풍년가)요, 목동의 풀피리 소리, 육축(소. 돼지. 말. 양. 닭. 개)이 노니는 축동인가. (공군목장) 지렁이 등(나지막한 고개) 사주벌에 보국조는 알을 품고 있는가.(훈비단. 창공의 보라매는 웅장한 소리로 영공을 날고, 보라매는 태평원에 둥지를 틀고 있네) 어느덧 해는 서포로 기우니, 등불을 벗 삼아 경전을 탐독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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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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