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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10. 흥사리(興士里)   곤양군 가리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갑사동ㆍ흥속동과 묵곡동 일부를 병합하여 흥속의 “흥”자와 갑사의 “사”자를 글자를 따서 흥사라 하여 사천군 곤양면에 편입되었으며, 흥사라는 말은 이름 그대로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흥사마을 회관

  흥사리는 면의 동쪽 9km지점이며 남쪽은 검정리, 동은 탑동, 서는 묵곡리와 북은 곤명면 신흥리와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천길봉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신선들이 글을 읽었다는 선들재(仙讀峙)와 명당인 곽가등이 솟아있어 곤명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문둘방으로 문달사라는 고찰이 있었으나 지금은 절은 간곳이 없고 절터와 주춧돌들이 대밭 속에 남아 있다.   예전에는 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며, 구강언을 막기 전 까지는 회관이 있는 앞 들까지 배들이 들어와서 염전용 화목과 기타 화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회관이 있는 앞들 아래에는 보물 제614호인 매향비가 있으며 비문과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어 향토사와 고고학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마을 남쪽에서 북쪽까지 2차선 도로가 포장되어 완사까지 통하고 있으며, 입구의 맨 처음 마을은 단숙(흥속)이라 하는데 문달사가 있을 적에 세속과 연을 끓는다는 단속(斷俗)이란 말도 전한다. 재를 넘으면 몰구리 앞들에는 근래까지 인공호가 되어 부들이 꽉 차 있었으나 흙을 메워 농토로 이용하고 있으며, 회관이 있는 덕골은 중심 마을로 비석거리에는 옛 지주들의 시혜공덕을 기리는 소작인들이 세운 비석이 있고, 제방 밑에 깊은 골에 흥사 저수지(1998년 준공)가 있어 흥사는 물론 묵실ㆍ검정ㆍ고동포까지 농용수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   생활은 벼농사 위주의 농사이며, 비닐하우스에는 토마토ㆍ고추 등을 촉성재배를 하고 있으며, 산지를 이용 밤ㆍ감 등의 과일을 수확하여 소득증대의 일익을 담당하며, 교통은 하루에 3회 사천으로 정기 버스가 다니고 있다.   1) 지명(地名)   ◦가암실 : 회관 서쪽마을로 가무실(歌舞室)이라는 설도 있다.   ◦갑사동(甲士洞) : 회관 북쪽 마을로 갓을 쓴 모양새라 함.   ◦갑사동 정자나무 : 갑사 입구 도로변에 큰 포구나무(수령 200년 정도)가 있는데 이 나무는 범우골산에 선영을 모신 김씨 문중에서 비보(裨補)로 심은 나무로 마을 동수(洞樹)였으며, 이 나무 아래에서 반상회도 하고 마을 유희도 하던 마을 집회소 이기도 하다. 옆에는 주막이 있었음.   ◦갯모퉁이 : 매향비와 북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옛날에는 배들이 여기까지 와서 염전용 화목을 운반하는 선창으로 산 밑으로 주막이 있었으며 2000년대 제방공사시 옛 화장실(化粧室)터가 발견되었음.   ◦게잿재(蟹峙) : 흥사마을 회관에서 북쪽으로 게작골로 넘어가는 재(峙)를 말하는데, 일부에서는 발음대로 게재(蟹峙)라고 말하기도 하나 게잦골은 가잿골이 변음되어 불리고 있는 것 같으며, 가재는 가장자리의 사투리인 가새를 뜻하는 말일 가능성이 있으며, 가장자리란 뜻의 옛말은 원래 감이였고 가사ㆍ가자ㆍ가재 등으로 전음되어 골(마을)이란 말과 합쳐서 가잿골로 되었을 것이다. 가잿골이란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 갓(邊)마을, 변두리 마을 뜻으로 가잿골이 경상도 발음으로 변천하였으리라 보며 개잿골은 그냥 게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사천문화2號(1998년))하는 것을 보아 곤양 소재지에서 변방에 위치한 마을인 게작골로 넘어가는 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같기도 하다. 이 재(峙)의 정상에는 할미당이라 하여 넘나드는 사람은 꼭 돌 한개씩을 던지는 풍습이 있어 지금도 돌무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게잿재의 서낭당 : 흥사에서 게잿골(가화)로 넘어가는 산고개에는 지금도 돌무덤(서낭당)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성황사, 서낭당, 국수당이라고도 한다.   서낭신이란 토지와 마을의 수호신이다. 대개 길가의 큰 나무가 이 서낭신의 거처가 된다. 길가는 사람은 누구나 돌을 올려놓고 침을 뱉거나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씩 두고 가는데, 이는 토지 수호신인 서낭신에게 재난을 없애고 복을 빌고 여행의 피로를 풀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였다고 한다. 이 고개는 진주로 통하는 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곳이다. 돌을 가져가 이 곳에 던지는 풍속은 길의 돌을 제거함으로 길을 정화하는 역할도 한 것 같다.   ◦탑골재 : 덕골(회관 있는 마을)에서 탑동으로 통하는 재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천 가는 주 통로였음.   ◦곽가등 : 갑사에 있는 명당(전설편 참조)으로 곽개데기로도 불려짐.   ◦질개(長浦) : 황새목에서 흥속 긴 골짜기까지 바닷물이 들었다고 하며 본래 질개는 장포천을 따라 바닷물이 흥사까지 들어올 때 이 곳을 질개(장포)라 하였음.   ◦단숙 : 흥사리 입구 동네로서 본래 이름은 단숙으로 문달사가 있을 당시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단숙이라 했을 것이라 한다. 지금은 흥속(興俗)이라 함.   ◦덕골 : 흥사 회관이 있는 마을.   ◦매향들 : 매향비가 있는 주위의 들.

흥사 저수지(모개골)

  ◦모개골 (목앳골) : 문돌방에서 남쪽으로 한 등을 넘으면 흥사마을이고 이 마을 막마침의 골짜기로 1990년 이 골에 저수지를 조성(1998년 완공)하여 흥사 저수지라 부른다.(일명 깊은골이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서당이 있었다.)   ◦몰구리 : 흥사 회관에서 남쪽으로 1Km정도의 떨어진 마을로 뒤로는 천길먼당이란 높은 산이 있고, 산 아래에는 흥사리 공동묘지가 있으며, 앞들에는 늪이 있었으나 농토로 변해 있고 건너편으로는 매향비가 있다. 이 늪을 중심으로 주의의 9개의 산줄기가 뻗어 있어 풍수적으로 말 9마리가 하나의 죽통(사료통:名地)을 넘보는 형국이라 하여 몰구리(말구리)라 불린다고 하여 지사들이 명지를 찾기 위해 이 곳을 답사하고 있다.   ◦묵은터 : 갑사 서남쪽 마을, 옛날에는 먹을 만들던 곳이라고 함.   ◦문돌방(文乭方) : 흥사리 갑사 갓쓴골에 있고 문달사(文達寺)라는 큰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절터가 대밭으로 변했지만 절의 본당자리에는 대뿌리가 뻗지 않는다고 함.   ◦범우골 : 갑사동 북쪽 마을로 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비석거리 : 흥사 구 회관이 있던 도로변이며 비석이 있음.   ◦상구더미 : 현재 매향비가 있는 곳으로 향을 묻었다는 곳.   ◦새몰(薪水) : 흥사 서북쪽 마을.   ◦석골(釋谷) : 매향비 옆(서북쪽) 골짜기로 옛 문달사가 번창할 시 이 골짜기가 절의 토지가 되어 승려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왕래를 많이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   ◦선들재(仙讀峙) : 갑사동 북쪽 고개, 곤명ㆍ신흥으로 통하고 있으며 신선들이 글을 읽었다고 붙여진 이름.   ◦용산이 재 : 범우골에서 가화(게잣골)로 넘어가는 재(사천가는 통로).   ◦진두름 : 매향비 있는 들판의 긴 논둑, 약 500m정도 됨. 지금은 경지정리로 길이가 단축되었음.   ◦진등 : 흥속 남쪽 긴 등성이.   ◦천길먼당 : 회관 뒤쪽 산으로 천길이나 되도록 높다하여 불러진 산봉우리.   ◦황새골 : 갑사동 북서쪽 긴 골짜기. 재를 넘으면 가화리 열두 굽이 길로 진주와 통하는 길.   ◦돌달목 : 범우골 앞 산 기슭(현재 창고가 있음).   ◦매봉재 : 새몰 서북쪽 산으로 매와 같이 생겼다 함.   ◦봉남골 : 회관 남쪽 산골짜기.   ◦돌굿재 : 흥속에서 몰구리로 넘어오는 재.   ◦똥매(똥뫼) : 덕골(회관)과 가무실 사이 들판에 불쑥나온 산을 말함. 독우산(犢牛山)의 우리말 변음으로 산의 모습이 송아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벼락딱가리 : 흥사회관에서 도로를 따라 갑사 입구(묵은터 맞은편) 도로변에 높이가 3m 정도 되는 큰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벼락을 맞아 갈라졌다고 하며 이 바위가 있는 곳을 벼락딱가리라 불렀으며 바위는 도로신설시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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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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