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제1절 지명 유래(地名 由來)   우리나라는 이름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우리 주위의 산과 들, 작은 골짜기, 산고개 하나에도 전설이 깃들고 지형의 생김새ㆍ역사흔적ㆍ고사 등의 의미가 깃들어 민족의 애환이 담기고 해학과 풍자가 조화되어 순수한 우리 토박이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때론 해석이 안되는 지명들이 어우러져 내려오고 있어 우리의 역사, 지리, 풍속, 제도 등의 생활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며 역사로 조상들의 얼과 숨결이 담겨져 왔다.   옛부터 땅이름은 “문화(文化)의 화석(化石)”이요 “겨레말의 곳집” 강원도에서 옛날에 감자와 고구마를 저장하던 움집   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고 귀중한 토박이 말들이 조선시대 500년 사이에 한문으로(가람, 뫼는 강과 산으로) 바뀌고 일제 강점기에는 더욱 많은 수난을 겪는다.   일제 강점기 즉 병자수호조규 이후 70년간은 우리나라의 지명이 큰 수난을 당하였다. 1877년 병자수호조규 이후 일본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조차지(租借地)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거류지를 정하고 동리 이름을 왜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강제 합병이 된 1910년에 이어 1914년 3월(부령 111호에 의거)에 전국의 모든 행정구역 단위인 부(部), 군(郡), 면(面), 리(里)를 일제히 폐지하고 분합하는 단군이래 최대의 행정구역 개편과 지명 개편 작업을 했다.   이때 우리 곤양군이 없어지고 곤양면으로 강등되어 사천군에 편입되었고 관내 면들이 리 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에 직명(職名)과 지명이 바뀐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순종황제는 이왕(李王)으로, 대한은 조선으로, 한성은 경성으로 바뀌는가 하면 리 단위도 무고(武庫)는 무고(舞鼓)로 바뀌는 등, 우리 옛부터 내려오는 지명을 향락ㆍ웃음으로 변화시켜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정책으로 고유한 우리 지명이 얼마나 많이 변질 되었는가? 그래도 어떤 외압에도 변하지 않고 옛 전설에 얼키고 조상들의 애환이 섞인 지명들이 명맥을 잇고 있으며,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구비(口碑)   강원도에서 옛날에 감자와 고구마를 저장하던 움집   와 기록에 남은 지명을 최대한 찾았지만 부족함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욱 찾아내고 다듬어서 길이길이 남겨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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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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