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제2절 행정구역의 지정학적 위상   곤양지역의 공간적 위상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내의 정치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왔다. 변한, 마한, 진한으로 구분되던 삼한시대 때의 곤양지역은 군미국으로 하나의 국가체제로써 중국 한반도 일본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로서의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포상팔국 전쟁이후 곤양지역은 가야국의 한 변방상의 위치로 축소되었고, 따라서 지정학상의 중요성이 퇴조하였다고 보여 진다. 이런 여파가 지속되고 또한 중국 일본과 해상을 통한 교역이 본격화 되었던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곤양의 지정학적 위상은 더욱 축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최치원선생의 여러 행적 중 봉명산에서 일정 기간 수도하였다는 전설, 목단 및 나비 등 전설, 도선국사의 행적들을 생각하여 볼 때 신라시대에도 곤양지역 자체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고려시대에 곤양지역은 진주목의 관할로 되었다. 조선초기부터 진주지역은 태조의 관심지역이었다. 세종과 단종의 태실지도 이 지역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한양에 집중되면서 곤양지역은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관계로 인하여 정치적 중요성은 약해지고, 다만 변방 군사방위지역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곤양이 해상전투의 요충지였으며 이광악 군수, 노진 군수, 이순신 등의 활약이 곤양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에 각종 조세물품을 모아서 배로서 운반하는 조창이 있었다. 합천 등 경남 내륙지방의 조세물품이 곤양 아방포 조창으로 운반되었으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들끓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조세집결지로의 경제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가산오광대도 이런 맥락에서 그 존립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곤양은 특출한 지역적 특성보다 한반도의 다른 읍면지역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고난을 겪었다.   20세기 후반 역시 정치권력이 서울에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권력구조 관계로 인하여 곤양면 역시 곤양면 자체의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나가기 보다는 국내의 다른 면지역과 비교하여 뚜렷한 특성 없이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21세기 지식 문화 및 우주 항공 산업의 시대에 있어서 공항ㆍ항만ㆍ고속도로가 연결되는 사천시의 지정학적 우월성을 잘 활용하고, 곤양의 지역적 특수성과 정체성을 찾아내고 확립하여 나가면서 미래의 곤양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