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곤양군의 교통ㆍ통신 조선시대의 교통과 통신은 주로 행정ㆍ군사 측면에서 비중이 더 컸다. 지방의 각 고을은 농경사회의 산업바탕 위에서 고을 수령을 중심으로 그 지방자체의 공간 안에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는 자치 공간적 기능을 수행하였기에, 다른 고을 및 지역과의 연대성이 현대처럼 절실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 또한 일상에서의 필요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육상 교통수단은 걷기, 말, 우마 수레, 가마 이용이 전부였다. 수상 운송 수단으로 조운선과 뗏목이 주로 이용되었다. 속대전에 따른 거리는 주나라 거리 단위인(周尺) 6척을 1보(步)로 하고, 360보를 1리(里), 30리를 1식(息)이다. 경복궁 앞의 원표(元標)를 기점으로 도정(道程)에 따라 매 10리마다 작은 이정표(少堠)를 두고, 매 30리마다 큰 이정표(大堠)를 두어 역을 설치하였다. 이정표에는 원칙적으로 이수(里數)와 지명을 새기었다. 그 밖에 매 5리마다 정자를 세우거나 오리목 오리목이란 5里마다 심은 나무라고 하여 붙여진 나무 이름이다. 을 심었고, 30리마다 느릅나무 또는 버드나무를 심어 도리(道里)를 표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