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제3장 정ㆍ당ㆍ재(亭ㆍ堂ㆍ齋)   서원(書院), 재실(齋室) 등은 조선 중기 이후 중종 38년(1543)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인 회헌(晦軒),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시발이다. 조선의 서원은 그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중국의 서원이 관인의 양성을 위한 준비기구로서의 학교의 성격을 고수하였음에 비하여, 조선의 서원과 재실은 사림의 장수처(藏修處)이면서 동시에 향촌사림의 취회소(聚會所)로서 정치적 사회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서원의 종류로는 사액서원(賜額書院), 사림서원(士林書院), 씨족서원(氏族書院)으로 분류한다. 사우(祠宇)는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두고 년(年) 수차례 제향(祭享)을 행하는 장소로 그 명칭은 곳에 따라 향현사(鄕賢祠), 향사(鄕祠), 이사(里祠), 영당(影堂), 별묘(別廟), 세덕사(世德祠), 유애사(遺愛祠), 생사당(生祠堂) 등으로 불리어 지기도 하였다.   사우의 발생은 인간의 보편적 의지인 선조와 선현의 숭배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시기는 고려말 주자학(朱子學) 전래 이후의 일이다. 부조묘(不祧廟)는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祠堂)이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모셔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이나 사림의 공론(公論)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가 되면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부조묘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짓게 되면서 부터이다.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는 묘 밑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 둘 수 있게 됨으로서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 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다음은 면내 亭ㆍ堂ㆍ齋의 현황과 기문(記文)과 관련 碑石을 가나다순으로 기록한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