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용현향토사



용현향토사

1. 고대(古代)의 용현(龍見)    기원전(紀元前) 3세기 이전(以前)에 성립(成立)된 삼한시대(三韓時代)에는 변한(弁韓)에 속하고(古朝鮮과 三韓. 韓國學報 제52輯, 1988) 그 변진(弁辰) 12국 중의 하나인 고순시국(古淳是國:지금의 진주(晋州)를 중심(中心)한 부족국가)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이는 천관우선생의 <진,변한 제국의 위치시론(辰 弁韓諸國의 位置試論)>의 논고(論考)에서 \"변진고순시국은 사물국(史勿國)인 사천지역(泗川地域)과 그에 인접(隣接)한 고호(古號), 구라(仇羅), 구량(仇良)의 삼천포(三千浦)지역에 비정(比定)한다\"라고 명쾌(明快)히 밝히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변진고순시국은 권위있는 학자들이 진주(晋州)로 비정(比定)하고 있음은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러나 사천군지(泗川郡誌: 1990. 8. 30. 발행) 68쪽에 다음과 같이 기술(記述)하고 있다.   󰡔(전략) 그러면 사천권이 소속했던 소국명(小國名)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변진12국 가운데 변진낙노국(弁辰樂奴國)은 지금의 하동(河東)지역,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은 지금의 진주(晋州)지역, 그리고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은 지금의 고성(固城)지역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하동, 진주, 고성지역 사이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사천은 사천만을 중심으로 서부지역인 지금의 곤양면 일대는 변군미국(弁軍彌國), 동부지역은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에 소속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러한 근거는 사천(泗川)이 고성(固城)과 이웃하고 있을 뿐 아니라 3세 기초 사천, 고성, 진동, 마산 등 남해안 일대의 포상팔국(浦上八國)이란 세력권이 형성되어 가라(加羅)와 대적(對敵)한 그 지역성을 고려(考慮)해 볼 때 가능하다(이하생략).>   라고 하는데 그 어떠한 역사의 대가라도 변진 12국(弁韓 12국國)의 위치를 정확(正確)히 자리 매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2000여년의 역사(歷史)를 거슬러 이 고장에 터전했던 부족국가(部族國家)인 성읍국가(城邑國家)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기원후(紀元後) 1세기경이 되면서 변진의 전통(傳統)을 계승(繼承)한 6가야(伽倻)가 형성(形成)되었고 변진지역이 마한(馬韓)이나 진한(辰韓)처럼 일국(一國)에 의해 통일(統一)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적(漸次的)인 통일을 이루어 갔으니 이제 가야시대(伽倻時代)가 열린 것이다.   가야시대에는 9대의 왕계(王系)를 이으면서 고성을 수부(首府)로 하는 소가야(小伽倻)는 2현(縣), 6향(鄕), 10부곡(部曲), 20개(個)도서(島嶼)를 통할(統轄)할 때 보령향(保寧鄕 : 서쪽 40리로 하이면, 상리면, 사천군 일부)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비정한다.   가야시대의 우리지역은 독자적(獨自的)인 고대국가(古代國家)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백제나 신라에 통합(統合)하지도 않은 채 6세기경 신라에 의하여 통합(統合)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으면서 마치 신라와 백제 사이의 완충지대(緩衝地帶)처럼 잔존(殘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후기에는 신라가 안으로 국력(國力)을 축적(蓄積)하고 밖으로 활발하게 뻗어나갈 때 백제, 신라와의 경계(境界)에 놓인 6가야는 신라의 영토 확장(擴張)에 따른 싸움터로 변하였다.   법흥황 18년(532) 금관가야(金官伽倻)를 복속(服屬)시킨 후 진흥왕 23년(562) 가야지경을 모두 복속시켰던 것이다.   고대사(古代史) 연구가에 의하면 사천지역은 7세기경에 한 때 백제 치하(治下)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武王) 6년(605) 2월에 각산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이 각산(角山)은 삼천포에 소재(所在)하고 있는 각산이며 의자왕 2년(642) 7월의 미후성(獼猴城)등 40여 성 함락(陷落), 8월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성주(城主) 품석(品釋 : 김춘추의 사위)이 항복(降伏)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백제(百濟)의 의병장 복신(福信)이 이끄는 부흥군이 문무왕 3년(663) 9월에 신라에 의해 완전히 공멸(攻滅)됨으로써 거열성(居列城 : 晋州)에 인접한 사천권도 7세기경인 605년을 전후(前後)하여 663년까지 백제의 영향(影響)아래 있다가 신라의 항구적(恒久的)인 지배(支配)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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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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