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3. 화암리(花巖里)   사천, 고성, 진주를 가르는 정동면(正東面)의 동북쪽 최고봉인 봉대산(鳳帶山 : 409m)을 주봉으로 하는 많은 산들이 줄기를 이루며 서북으로 뻗어 나갔다. 그 어떤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힘찬 파랑(波浪)을 이루며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어깨동무 하며 여러 갈래로 이어져 나갔다.   바위덩어리에 꽃이 피어난다는 뜻의 화암리(花巖里)는 이들 산줄기 중 사천의 옛 주산(主山)인 부봉산(浮蜂山 : 201m)의 끝 부분에 자리잡은 법정이동(法定里洞)으로 옥정(玉井), 여옥(如玉) 부락이 이에 속한다.   서로는 사천중학교(泗川中學校)와 사천향교(泗川鄕校)가 소재한 선인리(宣仁里), 북으로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경계로 구암(龜岩) 2리와 인접하며, 동으로는 도덕산(道德山) 넘어 부봉산의 줄기따라 풍정리(豊井里)와 접하고, 남으로는 국도 33호선이 지나는데 그 넘어 사천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화암리는 고읍, 예수, 풍정 그리고 수청리와 함께 본래 사천군의 상주내면(上州內面)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옥정동(玉井洞) 일부와 군내면(郡內面 : 현 사천읍 지역), 선인동(宣仁洞) 일부를 병합하여 화암리란 지명으로 읍(정)동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화암(花巖) 마을   현재 농업의 요람(搖籃)인 경남자영고등학교(慶南自營高等學校)가 자리한 부락으로서 마을 어귀에는 산비탈 따라 국도(33호선)가 지나간다. 자영고 옆길을 휘돌아 서류지(小溜池)를 거슬러 올라가면 두 줄기의 산등성이가 양옆으로 뻗어 내리고 그 가운데 포근히 감싸이듯 자리잡은 아담하고 정겨운 마을이 열린다. 화암마을이다.   양지바른, 오월 한낮에 햇빛을 담뿍 받고 있는 화암마을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어느 때 없이 한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전형적(典型的) 전원(田園)마을이다. 동서는 병풍처럼 둘러 있는 산들과 앞쪽 산등성이에 감싸인듯한 마을은 참으로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사천의 주산으로 벌이 나는 형상이라하여 부봉산(浮蜂山)이라 일컫음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거니와 청자빛 하늘과 검푸른 소나무숲으로 어우러진 산 벼랑에는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를 짊어진 자세로 굽어보고 있는 장중(莊重)한 바위덩어리가 위풍(威風)스러움을 과시하고 있다.   이 우람한 바위는 사시절(四時節) 보는이에 따라 여러 형태로 비친다. 그러나 봄이 되면 펑퍼짐한 바위틈에 돋아난 진달래꽃은 바위를 온통 붉게 물들인다. 이로서 꽃바위 즉 화암(花巖)이란 땅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옛적에는 임천(林泉)에 묻혀 살던 선비들이 자오산수(自娛山水)하며 벼랑바위에 만발한 봄의 정취(情趣)를 만끽하였을 뿐 아니라, 대자연과 인생을 찬미하는 산수가(山水歌)를 읊조리며 더러는 시객(詩客)들이 모여 시회(詩會) 또흔 즐겼슴직 하다.   마을 연원(淵源)에 관하여는 뚜렸한 기록이나 구전(口傳)된 바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상고(詳考)할 수 없다. 하지만 옛날부터 산자락이나 얕은 언덕배기에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가야토기편(伽耶土器片)들이 수습되는 사례로 보아 먼 상고(上古)때 부터 사람들이 골안에 들어와 살았던 흔적으로 여겨진다.   이 부락도 여타 부락과 마찬가지로 언제부터 어떤 성씨(姓氏)가 제일 먼저 입향하여 정착했는지 막막(漠漠)하다. 하지만 사천이씨(泗川李氏)가 먼저 들어와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그것은 이씨의 본관(本貫)이 사천(泗川 또는 東城)인데서 뿐 아니라 옛적부터 집성촌(集姓村)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2) 옥정(玉井, 옥새미골)   화암마을 입구(자영고)에서 사.고선(泗固線) 따라 동쪽으로 700m쯤 이르면 왼손편 길가에 ‘옥정마을’이라 새긴 안내표석이 서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비탈길을 조금만 오르면 오목하게 생긴 마을이 열린다.   이 부락 역시 부봉산(浮蜂山)의 줄기가 남으로 흘러 내린 그 밑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밖에서 보면 온통 송림과 대밭(竹林)으로 에워싸여 입지(立地) 조건상 농업을 위주로 하는 한촌(閑村)으로 20여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산다.   마을 이름이 옥정(玉井)인 것은 문자 그대로 옥새미가 있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부터 주민의 생명줄인 이샘은 그 맑고 깨끗함이 이를데 없었다고 하며 그래서 옥수(玉水) 같이 맑은물이 난다하여 옥정(玉井)이라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우물 또한 어느 마을의 우물과 마찬가지로 이웃과 이웃이 만나 도타운 정을 나누던 대화의 마당이기도 하였단다. 언제나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그리고 삶의 갈증을 풀어주는 인정(人   情)의 젖줄처럼 옥새미는 길어도 길어도 마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우물이었슴은 두말할나위가 없다.   이제는 편리한 세상, 마을 앞 들녘의 관정(管井)이 설치되어 집집마다 수도물이 넘쳐 흐르고 머리로 이어 나르던 물동이의 번거로움도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옥새미는 폐정(廢井)이 되어버렸고 우물가의 팽나무 한 그루만 그 옛날 어머니들의 주고 받던 정담(情談)만 간직한채 푸르름만 더해가고 있다.

(3) 여옥(如玉, 여리골)   옥정(玉井) 부락에서 동쪽편 고개 넘어 약간 떨어진 산자락의 오목한 마을. 20여 가구가 오순도순 처마를 마주대며 모여사는 마을이다. 동서북(東西北)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적한 산촌(山村)기분이 드는 마을이지만 마을 어귀 남쪽에는 사.고선(泗固線)이 관통하여 하루에도 수천대의 차량들이 왕래한다.   숲으로 가려진 동구(洞口)밖 큰길 가에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남라등(南羅嶝)이 위치하여 나뭇가지 사이로 오르내리며 조잘대는 산새들의 노래소리 태고(太古)적 고요함을 파적(破寂)한다. 그 밑자락에는 동학혁명(東學革命) 당시 사천장두(泗川狀頭)로 활약한 동계거사(東溪居士) 최한범(崔漢範)의 송술기적비(頌述紀蹟碑)가 서 있어 어두운 그 시절 함성(喊聲)이 들려오는 듯 하다.   또한 마을 어귀 왼손편 산마루에는 최근에 이룩한 산역(山役)으로 사천이씨(泗川李氏)의 시조(始祖) 식(軾) 이하 누세(累世)를 향사(享祀)하기 위한 숭조사업(崇祖事業)의 사우(祠宇)가 건립되어 그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는 예스러운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여옥부락은 예로부터 이름난 효자(孝子) 마을로 전해 온다. 이는 조선 중종(中宗) 때에 예조참의(禮曹參議) 벼슬한 이륜(李綸 : 泗川李氏參議公派祖)의 후세(後世) 10대의 세장지(世葬地 : 여러 대의 묘가 있는 땅)일 뿐만 아니라 그의 9세손인 서백재(捿壁齋) 지한(之漢 字 明遠)과 아들 양건(陽健) 그리고 손자 채식(采植)까지 3대를 이어 온 효행은 신인(神人)이 감복한 이적(異蹟)으로 일어난 호감고사(虎感古事)와 효행시(孝行詩), 효행가(孝行歌) 그리고 효행사적을 엮은 서백재효감록(捿碧齋孝感錄)이 전하기 때문이다.   여옥(如玉)이란 땅이름은 마을이 마치 구슬처럼 오목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마을의 옥정(玉井)과 함께 이곳에 예부터 물좋기로 소문난 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사람들은 생명의 원천(源泉)이 되어준 샘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후자에 많은 심증(心證)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옛적에는 예홀(禮屹) 또는 여홀(如屹)이라 한 것을 보면 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지명이라 하겠다.      ○ 동산먼당 <산> : 화암 부락 입구에 있는 산으로 화암소류지 위에 있다.   ○ 떰 불 산 <산> : 화암 부락 동쪽에 있는 산으로 벌이 나는 형상이라하여 지금은 부봉산(浮蜂山)이라 하는데, 옛적에는 사천의 주산(主山)이면서 진산(鎭山)으로 신성시(神聖視)해온 산으로 두음벌산(豆音伐山)이라 하였다. 떰불이란 두음벌의 음운(音韻)이 방언화(方言化)한 것이다.   ○ 덤 바 우<바위> : 부봉산(떰불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화암(花巖)이란 땅이름도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 도덕(道德山) <산> : 화암 부락 남쪽에 있는 예수리의 서낭당산과 마주한 산으로 밑자락에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그 밑으로 국도 33호선이 지난다.   ○ 사천이들 <들> : 고랑들(또는 고랭이들)로서 즉 사천평야를 말한다.   ○ 팽나무<나무> : 옥정 부락 샘가에 있는 나무로 높이 약 15m 둘레 4m.   ○ 물통골(水桷谷)<골> : 화암 부락 동남쪽 부봉산 산자락 깊은 곳에 있는 골짜기로 수통골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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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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