弟2節 지명유래(地名由來)   이 땅에 처음 사람들이 들어와 터를 잡고 무리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지명은 생겨났다. 장구(長久)한 세월을 통해 내려오면서 지명은 새로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다른 음이나 뜻으로 바뀌어지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목이나 짐승의 이름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명들도 처음에는 ‘사물’, ‘사가람’, ‘한실’, ‘쇠실’, ‘구름실’ 말과 같은 정답고도 순수한 우리 토박이 말이었슴이 틀림없다. 그 후 중국의 문물(文物)과 함께 한자(漢字)가 들어와 마땅한 기록 수단이 없었던 우리의 문자를 대신하게 되고 지명을 기록하려다 보니까 먼저 이를 한자화(漢字化)하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뒤다르게 되었다.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은 음훈(音訓) 체계가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비슷한 음을 취해 적기도 했고 어떤 것은 뜻을 취해 적기도 했다. 또 이러한 음차(音借)와 훈차(訓借)가 하나의 고유명사 속에 뒤섞이기도 했으니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를 비롯한 옛 문헌에 나타난 삼국시대의 지명들이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6년(757) 통일 신라가 전 국토에 대한 행정구역을 단행하면서 지명의 일대 개편 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다. 사천(泗川)의 처음 명칭인 <사물(史勿)>이 <사수현(泗水縣)>으로 고쳐 부르게 된 예에서 보듯 당시의 개명 작업이 철저하게 뜻을 취한 훈차(訓借)를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래의 음운(音韻)과는 더욱 더 거리가 먼 지명들이 생겨난 예는 허다하다.   일인(日人)들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 지명의 변화는 더욱 심하여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구실 아래 새터 또는 새다리가 신월(新月)로, 고자실(古自谷)이 학촌리(鶴村里)로 엉뚱하게 둔갑하는 식의 전래의 전통 문화적인 배경을 무시한 경우 또한 허다하다. 풍정(風亭)이 신풍동(新豊洞)으로 바뀌고 신풍동과 상정동(上井洞)이 풍정리(豊井里)가 되고 놀내인 장천동(獐川洞)과 몽대인 대산동(岱山洞)이 장산리(獐山里)로 둔갑하는 이같은 예는 당시 일인들이 정한 명칭을 대부분 그대로 이어 받은 오늘날의 이명(里名)들 중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가 있다. 오낼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실체는 어디론가 날아가 숨어 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기초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오늘날의 지명들이다.   그래도 일부 자연부락 이름들 중에는 구전(口傳)을 통해 내려온 우리말 이름의 편린(片鱗)이 남아 있어 지명의 뜻을 캐는 작업에 청량제(淸凉劑)가 되어 준다.   이상으로 살폈듯이 땅 이름이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땅과 인간과의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고, 이것은 지리나 역사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여러 방면에 걸친 생활 체험의 소산(所産)이기도 하다. 땅이름은 우리 고장의 토박이 말 방언(方言)에서 유래된 것도 있고 앞서 말한 엉뚱하게 둔갑한 것, 옛날 생활 관습, 또한 여러 가지 인연과 얽히어 재미있는 것도 있다.   이들 땅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옛말의 모습이나 그 변천 과정(와전-訛傳), 발음 경향 등을 우리 고장에 있어서 언어(言語) 연구에 좋은 시사(示唆)를 줄 것이고 거기 얽힌 유래나 전설 따위는 제각기의 애향심(愛鄕心)과 조상에 대한 존경심과 나아가서는 국토(國土)에 대한 애착심이 우러나리라 믿어지는 것이다.   정동면 일대의 지명은 지금의 사천강을 젖줄 삼아 일찍부터 농경 문화를 일구어 온 곳이고 고현지(古縣址)로서의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었던 곳이므로 거기에 연유(緣由)한 땅이름이 있고, 그밖에 자연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얽힌 지명도 더러 있다. 그러나 지명 연구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고장 지명 유래를 소상히 밝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본고(本稿)에서는 행정지명(行政地名)의 변천 과정을 관계 문헌을 통해 조사한 바를 소개하는 정도의 기초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슴을 밝혀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