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5. 배방사지(排房寺址)   이 사지(寺址)는 정동면 장산리 대산(垈山)부락 뒤 천금산(千金山) 맞은편 산자락에 있다. 절터를 중심으로 사방이 빙 둘러싸여 가운데가 오목하게 생겼는데, 속칭 ‘배방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좁다란 길목이 남쪽으로 트여서 골안에 이르면 산비탈 절터 아래는 1930년대에 축조한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맑디맑은 저수지가 자리하여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경관을 자아낸다. 서북쪽 산비탈에 위치한 절터는 지금은 모두 다락밭으로 일구어져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돌로 쪼아 만든 나한상(羅漢像)과 샘의 두껑돌, 그리고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靑磁片)과 기와조각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었다.    배방절(排房寺)이 옛날부터 이름나게 된 까닭은, 고려 초기에 현종(顯宗)이 어린시절 한때를 이 절에서 보낸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을 비롯하여 여러 향지(鄕誌) 배방사조(排房寺條)를 보면 현종에 관한 고사(故事)가 어김없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구명노곡 재와룡산 고려현종 미시 상우거차사 견사 아제시 왈, 소소사아요 약란 만신홍금자반란 막언장재 화림하 일일성룡야불난(舊名蘆谷 在臥龍山 高麗顯宗 微時 嘗寓居此寺 見蛇兒題時曰 小小蛇兒繞藥欗 滿身紅錦自斑爛 莫言長在花林下 一日成龍也不難)”이라고 씌여 있다.      이를 풀이해 보면, “배방사의 옛 이름은 노곡사(蘆谷寺)인데 와룡산에 있다.   고려 현종이 어릴적 이 절에 우거(寓居 : 타향에 임시로 삶)할 때 꽃뱀 새끼를 보고 지은 시에 이르되,      작디 작은 꽃뱀 새끼가 난간(欄干)에 올랐고나   온 몸은 비단같고 반점(斑點)은 아름답네   이 작은 꽃뱀도 숲에만 살 것이라 말하지 말라   때가 오면 하루에 용(龍)이 되어 하늘에 오를 것을      위의 아제시(兒題詩)는 현종 순(詢)이 어린 소년시절을 배방절에서 보내면서 남긴 시라 할 수 있다. 참으로 기백(氣魄)이 넘친 시로서 이외에도 잠저(潛邸) 10년동안 숱한 일화(逸話)를 남겼던 것인데, 시에 담긴 뜻은 장차 평범한 세속의 사람이 아니라 임금이 될 것을 내다보는 내용으로 그 의지와 날카로운 기상을 어릴 적부터 엿보게 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현종 순이 어떤 연유로 해서 머나먼 이곳 사천 땅에까지 내려와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현종의 출생 때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가 되므로 <고려사> <고려사 절요>에 의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성종(成宗) 임진 11년(992)조에 “가을 7월 초하루 임진일에 종실(宗室) 욱(郁)을 사수현(泗水縣:泗川)에 귀양 보냈다.”하고 또 같은 왕 병신 15년(996)조엔 “가을 을사일에 왕욱(王郁)이 사수현에서 죽었다.”라고 씌여 있다. 그러니까 종실의 왕 욱이 사천땅에 귀양와서 만 4년만에 죽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피면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종실의 왕욱(王郁)은 태조(王建)의 여덟째 아들이다. 그 집이 경종(景宗:5대 임금)의 비(妃) 황보씨(皇甫氏)의 사제와 서로 가까웠다. 경종이 젊은 나이로 세상에 떠나매 비(婢)는 청상(靑孀)의 몸이 되어 사제에 나와 거처하였는데, 일찍이 꿈에 곡령(鵠嶺)에 올라가서 오줌을 누니 나라 안에 넘쳐흘러 모두 은빛 바다를 이루었다. 점을 쳐 보았더니, “아들을 낳아 한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하므로 비(妃)는 “내가 이미 과부가 되었는데 어찌 아들을 낳을수 있으랴”하였다. 후에 욱(郁)이 드디어 비(妃)와 관계하여 아기를 배었으나,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비는 대종(戴宗 : 태조의 아들로 郁의 형)의 딸이었다. 어느 날 비(妃)가 욱(郁)의 집에 유숙하니, 집안사람들이 뜰에 섶을 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한창 맹렬할때, 왕(成宗)이 빨리 가서 물어 그 까닭을 알아본즉, 욱(郁)이 난륜(亂倫)의 죄를 범했으므로 그를 (사수현에) 귀양보냈다. 비(妃)는 집으로 돌아와 겨우 문에 이르자 산기(産氣)가 있어, 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아이를 낳고는 죽었다. 왕이 보모(保姆)를 가려서 그 아이를 길렀다. 아이가 나이 2세가 되었을 때에 왕이 불러 보니 보모가 아이를 안고 들어 왔다. 아이가 왕을 쳐다보고 “아버지”하고 부르며 무릎 위에 올라와서 옷깃을 움켜잡고 또다시 “아버지”하고 불렀다. 왕이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가 아버지를 생각하는구나”하고 이에 사수현으로 보내어 욱(郁)에게 돌려주었다. 이 아이가 곧 순(詢 : 顯宗)이다.(고려사 절요 성종 임진 11년조)    이상에서 살폈듯이 현종 순(詢)은 나이 두 살 때부터 강보(포대기)에 싸여 사천땅으로 내려와 배방절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린 순(詢)은 아버지 욱(郁)과 함께 배방절에서 살았던가에 대해선 훗날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없지 않다. 왜냐면 비록 왕명으로 부자상봉(夫子相逢)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죄인과의 동거(同居)는 불허(不許)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 욱(郁)은 적소(謫所 : 귀양살이 하는 곳으로 아마도 지금이 사남면 화전리나 우천리로 추정)에서 배방사의 아들 보러 가는 것을 유일한 낙(樂)으로 삼고 하루도 빠짐없이 넘나 들은 산마를 고자봉(顧子峯) 또는 고자실(顧子谷)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욱(郁)은 귀양살이 5년만에 아들 순(詢)을 남겨놓고 마침내 죽었는데, 그는 문장을 잘하고 또 풍수(風水)에도 정통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귀양살이 하는 와중에서도 자신이 묻힐 묏자리를 봐 두었는데, 일찍이 아들에게 금(金)한 주머니를 비밀히 주면서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이 금주머니를 술사(術師)에게 주어 현의 서낭당 남쪽 귀룡동(歸龍洞)에 장사지내고, 장사할 때 반드시 시신을 엎어 묻게 하라”고 유언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들 순(詢)은 자라서 숱한 풍운(風雲)을 겪은 후 왕위(王位)에 오르니 이가 곧 고려 8대 현종(顯宗)이다.    따라서 그가 묻힌 묏자리를 능화봉(陵華峯)이라 하였으며 뫼 아래 마을을 능화촌(陵華村)이라 하다가 오늘날 능화(陵花)마을로 부르고 있다.    현종은 왕위에 오른 후 어릴 적 사천 생각이 났음인지 자신을 좌우에서 돌봐준 언효(彦孝), 효질 (孝質) 두 사람에게 좋은 전지(田地)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사수현(泗水縣)을 높여 사주(泗州)로 승격시키니 이때가 왕 6년(1015) 윤 6월의 일이다. 이처럼 현종은 사주민에게 은전(恩典)을 베풀었던 것인데 이에 그치지 않고 사주(泗州)는 풍패(豊沛 : 한고조(漢高祖)의 고향. 사주는 현종의 아버지 욱 안종(安宗)이 사주로 귀양가 살다가 죽은 곳이므로 풍패라고 말함)의 땅이라 하여 궁장(宮莊)에 딸린 공전(公田)을 풀어서 민전(民田)으로 보상(報償)해 준데 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배방사(排房寺)는 고려 왕실과의 인연으로 명찰(名刹)로서의 영화를 누렸을 뿐 아니라 임금을 모셨다는 뜻의 일명 배왕사(陪王寺)로 이름을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절의 창건 시기를 <조선 사찰사료>에 의할 것 같으면, 본래 북방계(北方系)의 절로서 신라 경덕왕 22년(763)에 대내마(大奈麻:품관 10 등) 공관(이순 혹은 이준)이 승려가 되어 이곳에다 절을 짓고 앞서 말한(구명) 노곡사(蘆谷寺)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절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사찰이라 하겠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해서 폐사(廢寺)가 되었던 것일까? 고로(古老)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1920년대를 전후하여 절간에 빈대가 엄청나게 뒤끓어 그만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 사찰의 종말이 비참하다 하겠으나 그래도 고려 현종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만큼 비록 유허(遺墟)로 변했으되, 향토사적(鄕土史的)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절터의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하여 사천문화원(泗川文化院)에서는 1988년 5월 높이 3.7자, 너비 1.2자. 두께 0.5자로 된 빗돌을 세워 그 사적을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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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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