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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第 3 章 古墳遺蹟   최근에 이르러 가야사(伽耶史)의 연구 성과로 가야시대(伽耶時代)를 전.후기로 나누어 논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경북의 고령(高靈)은 후기가야연맹(後期伽耶聯盟)의 맹주국(盟主國)이었던 대가야(大伽耶)가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반면에 한때 전기가야(前期伽耶)의 맹주국이었던 금관국(金官國:경남 김해)을 대가야라 부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금관국이 세력을 상실한 뒤인 5세기 후반대 이후 멸망시까지는 낙동강 서안(洛東江西岸)을 거점으로 하여 고령의 가야세력이 대가야로 부상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의 대가야를 맹주국으로 한 대가야연맹의 세력 판도는 고령계토기(高靈系土器)가 출토되는 합천. 함양.남원 등 지리산(智異山) 주변은 물론 진주.사천.고성 등 섬진강(蟾津江) 유역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경남의 대부분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세력판도이나 연맹권 안의 각 소국들은 독자적 세력 기반을 갖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후기의 대가야도 결국 562년 신라(진흥왕 23)에 의해 멸망되면서 가야제국의 역사는 마침내 그 종말을 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고장 사천이 대가야 연맹권 내의 독자적인 한 소국으로서의 존재 여부는 다음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즉, 고령계토기의 분포권(分布圈)은 굽다리접시(高杯)와 긴목항아리(水平口緣長頸壺)를 표지(標識)로 하는 소위 <泗川. 固城式土器>의 분포권으로 알 수 있다.    이들 양 형식 토기의 분포 범위는 상당부분이 겹쳐 있어서 서로 밀접한 교류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를 통해 보면 이들 양 형식 토기의 분포 범위는 고령을 비롯하여 합천, 거창, 남원, 함양, 산청, 진주, 사천, 고성, 창원 등지에까지 이르며, 따라서 김해의 예안리(禮安里) 유적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다. 또한 이들 토기가 출토되는 시기는 대체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대로서 대가야연맹의 전성기 때에 해당된다.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등 양 형식의 분포권을 예로 든 것은 이 시기에 조성된 고분유적(古墳遺蹟)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개의 가야토기(伽耶土器)는 이런 고분유적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 고분은 성토(盛土)한 무덤 또는 성토하여 고봉(高封)으로 만든 무덤방을 뜻한다. 고분에는 민묘류(民墓類)의 고분이 있는가 하면 왕권을 바탕으로 권위와 위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고봉(高封) 형태의 거대한 고총고분(高塚古墳)이 있는데, 우리 사천에는 후자에 속하는 지배계급자의 무덤은 선진리고분(船津里古墳) 1개 밖에 없고 그 외에는 모두 민묘류 계통의 고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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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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