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정동면지



정동면지

第 2 節 산성(山城)의 축성과 주변의 문화유적   사천읍(泗川邑)에서 남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정동면 예수리의 뒷산인 정상에는 일명 ‘고읍성’이라 일컬어지는 테메식 산성이 있다. 古邑城이라 한 것은 옛 사천의 읍기(邑基)인 고현지(古縣址)가 산성밑 바로 지근거리에 있은데 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상으로 산등의 능선(稜線)따라 사남면 화전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고성군 무이산(武夷山)의 내맥(來脈)으로 이구산(尼丘山)에 이어 그다지 높지 않은 해발209m의 완만한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다.    사천공항(泗川空港)을 내리거나 남해고속국도(南海高涑國道)를 벗어나 사천읍을 거쳐서 삼천포항과 고성, 통영 방면으로 가자면 국도 3호선 및 33호선의 도로가 모두 이 성 아래의 서남북과 동으로 통과하고 있으므로 자연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교통상의 요충지(要衝地)에 해당된다.    성축의 형태는 마치 머리위에 수건(手巾)을 동여맨 것 같은 형상(形狀)인데, 대체로 산세를 이용한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된 전형적(典型的) 산성으로서 성터의 높은 곳에 서서 사방을 두루 살피면 동서남북의 시계(視界)가 탁 트여서 남북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사천만(泗川灣)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뿐더러 멀리 북으로는 진주의 시가지(市街地)가 아스라하게 보일 뿐 아니라, 남으로는 풍광이 명미(明媚)한 한려수도(閑麗水道)의 검푸른 바다도 훤히 조망(眺望)되어 고대 산성이 지니는 제반 입지조건(立地條件)을 두루 갖춘 이른바 군사상의 요해처(要害處)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극남(極南) 요해처에 성보(城堡)를 쌓고 또 통신수단으로 연대(煙臺:횃불을 지피는 봉화대)를 두었다는 것은 새삼 선인(先人)들의 슬기에 감탄할 따름이며, 한편으로 <고려사>를 더듬어 보면 짐짓 일찍이 성을 쌓아 고을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든다.    그것은 고려사에서 “공민왕 7년(1358) 3월 11일 왜구(倭寇)가 각산수(角山戍:삼천포)에 쳐들어와서 배 300쳐 척을 불태우고 달아났다.” 고 하였으니 왜구가 사천지역에 쳐들어 온 것이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공민왕 9년 (1360) 4월에 왜구가 사주(泗州:泗川)각산에 쳐들어왔다.”하였고, 다음해인 같은 왕 10년(1361) 8월에도 “왜구가 양주(양산).김해부.사주.밀양군에 쳐들어 와서 피해를 입혔다”고 했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공민왕 13년(1364) 3월에 “왜구가 고성과 사주에 쳐들어 왔다”고 했다.    왜구의 침범은 물론 식량을 노략질하기 위해서지만 그 세력이 더욱 강성해진 반면 고려는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인 남서해안 연변에는 왜구의 창궐로 말미암아 섬사람들이 뭍에 올라 와 살지 않으면 안되었고, 심지어는 공도(空島)로 섬을 비워두었다는 것은 사실(史實)이 이를 입증한다.    왜구의 발호(跋扈)는 계속되어 우왕(禑王) 4년(1378) 12월조를 보면 “도순문사 배극염(裵克廉)이 하동과 진주에 쳐들어온 왜구를 쳐서 19급을 목베고 병마사 유익환(兪益桓)과 더불어 사주까지 추격하여 2급(級)의 목을 더 베었다”하였고 또 같은 왕 5년(1379) 9월조에는 “왜구가 사주.진주.산음(산청).함양 등지에 쳐들어 왔으며, 왜구가 반성현 확산상정을 점거하여 목책을 쌓아 스스로를 보전하여 노략질하고 있으므로 우인열(禹仁烈). 박수경(朴修敬). 오언(吳彦)장군 등이 포위 공격하여 14급을 목베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에도 왜구의 침범을 당했는데, 태조(太祖) 5년(1396) 8월에는 “왜구들이 경상도를 덮쳐서 사천의 통양포(通洋浦:현 용현면 선진리)에 쳐들어 와서 병선(兵船: 稅米의 운송선인 듯)을 빼앗아 달아났다”고 하였다.

   <고려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아도 이같이 여말 선초에 왜구는 이 지방을 쉴 새 없이 창궐하여 노략질하고 있었으니, 당시의 사천지역은 봉적지장화(鋒鏑之場化)하여 왜구들과의 칼날과 화살 끝이 부딪치는 싸움터였던 것이다. 때문에 조선조에 이르러선 고려 때의 허술한 방어체제의 전철(前轍)을 지양(止揚)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방력의 강화와 군사제도의 개선이었다. 이에 해상방어를 위한 포진(浦鎭)의 설치와 연변에서 가까운 요해처에는 영진(營鎭)의 설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태종 15년(1415) 9월,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를 좌우(左右)로 나누어 좌도에는 울산진(蔚山鎭) 우도에는 사천진(泗川鎭)을 두어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로 하여금 지역방어에 임하게 한 것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요해처(要害處)인 종래의 서낭산(城隍山)에 성보(城堡)를 쌓아 사천 고을을 지켰다. 그리고 이후 왜구의 발호(跋扈)는 사라졌다.    한편, 문화적인 관점에서 이 산성의 주변 환경을 참고로 살펴보면 사천만의 동서해안선에는 여러 곳에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조개더미(貝塚)가 있고, 해안에서 들어간 내륙지대에는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선들(立石) 등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서 초기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까지의 유적이 널리 퍼져있다. 그 중에서도 서포면 구평리의 조개더미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각종 골각기(骨角器) 등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말기의 유물들이 발굴된 바 있다. 고인돌은 사천읍 구암리, 두량리, 정동면 수청리. 장산리.소곡리.사남면 화전리, 용현면 신복리.송지리.구월리.덕곡리 등지에 모여 있으며, 특히 문화재로 덕곡리의 고인돌(도지정 제40호)이 지정되어 있고, 사남면 화전리에는 선돌이 주택지 가운데 있다. 또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것으로 이 서낭산성 서쪽에 예수리 고분군(古墳群)을 비롯해 사천읍 두량리, 사남면 월성리.유천리, 용현면 송지리. 선진리 등지에 분포되어 있고, 이 가운데 선진리의 무덤방은 수장급(首長級)의 고분으로서 그 규모가 거대하다.    성지(城地)는 본 산성을 비롯하여 사천읍성과 곤양읍성, 사남면 우천리 산성, 용현면 선진리성, 곤명면 금성리의 토성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축조된 성곽들이다. 특히, 선진리성(船津里城:사적 제 50호)은 본래 고려 초에 설치한 12 조창(漕倉 : 稅米를 모아 운송하는 창고)의 하나인 통양창(通洋倉)의 창성(倉城)이 그 전신이다. 임진란 때 왜군(倭軍)이 남해안 장기 유둔(留屯)을 목적으로 종래의 창성(토축으로 3,086척)을 수축한 성인데 피아간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흔히 왜성(倭城)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명칭은 신채(新寨) 혹은 왜증성(倭甑城) 따위로 불린다.    이름난 사찰(寺刹)로는 곤명면 용산리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 다솔사(多率寺)가 있는데, 대양루(大陽樓:도지정 제 83호), 극락전(極樂殿:문화재자료 제 148호), 응진전(應眞殿:문화재자료 제149호) 등이 있다. 또 곤양면 무고리의 보안암석굴(普安庵石窟 : 도 지정 문화재 제39호)은 다솔사에 딸린 돌을 쌓아 올린 석굴에 장육석불(丈六石佛)을 봉안하여 석굴암의 양식을 따른 점이 주목된다. 곤양면 흥사리에서 근년에 발견된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보물 제 614호)는 1387년(우왕 13)에 이 지방 사람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미륵보살의 하생(下生)을 축원하여 매향한 곳에 세운 돌비석으로 총 204자의 축원문이 새겨져 있다. 이 밖에 사남면 화전리의 귀룡사(歸龍寺)와 곤명면 용산리의 서봉사(捿鳳寺)는 삼국시대에 남방계불교(南方系佛敎)를 받아들여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고, 귀룡사의 후신으로 九龍寺가 그 절터위에 중건되었다.    그리고 정동면 장산리의 배방사지(排房寺址)는 고려초 현종(顯宗)이 유시(幼時)에 우거했던 유서깊은 절터이다.    또한 사천읍 선인리의 사천향교(泗川鄕校:도지정문화재 제220호), 곤양면 송전리의 곤양향교(昆陽鄕校: 동 제 221호)는 각각 지금의 자리에 이건하여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사천읍 구암리에 구계서원(龜溪書院: 도지정 문화재 자료 제40호)이 있다. 곤명면 은사리에 세종대왕태실지(世宗大王胎室址)가 있고 이 밖에도 유형, 무형의 지정문화재가 수없이 있는 등 사천관내에는 각종 문화재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어 향토 사적으로 뛰어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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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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