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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孺人昌寧曺氏烈行碑   열부인조씨자고수원백남성처오호생여륜막중이경지자유언개생지원중인소동이절열자유시이불원륜지행역중인소동이기구자유시이불행기자경중지각이이중소절모재독륜고세유절열칙시군정행로식정지불족우편술이전아 열성조강륜행실전후집성자차야고인진술중인여차황견기인이가무언호조씨년십팔가이십사부정질반년극성구료이경화시 융희기유동조씨자후절식단억애위구고기이야상총천방이석추흉하종오호열재하경생지차소중비륜견문용동유상수발개륜충소동야남성무남종질만기위후일여밀성박도근경술춘인모입비이상개청기사불획술이명왈 수원방춘종채득벽기기동한귀복동혈탄로창수상수무기향명사방숙정규방영능오도찬복술백십기열강전강석   삭령 최효습 찬   임오(사이칠오) 십이월 일 립         烈夫人曺氏者故水原百南成妻嗚呼生與倫莫重而輕之者有焉盖生之願衆人所同而節烈者有時而不願倫之行亦衆人所同而忮求者有時而不行其自輕重之各異而衆所折慕在篤倫故世有節烈則時君旌行路式旌之不足又編述而傳我 烈聖朝綱倫行實前後集成者此也古人陳述重人如此况見其人而可無言乎曺氏年十八嫁二十四夫貞疾半年極誠救療而竟化時 隆熙己酉冬曺氏自後絶食但抑哀慰舅姑旣彝夜上塚穿傍以石搥胸下從嗚呼烈哉何輕生至此所重非倫見聞聳動儒狀隨發盖倫衷所同也南成無男從姪萬基爲後一女密城朴道根庚戌春人謀立碑以狀介請紀辭不獲述而銘曰 水原芳春種採得璧寄旣同閈歸復同穴坦路唱隨殤壽無期香名四方肅情閨房英陵仵圖贊腹述百十其烈岡專姜昔   朔寧 崔孝習 撰   壬午(四二七五) 十二月 日 立         烈女 曺氏는 돌아가신 水原白氏 白南成의 처다. 인생이 倫理道德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힘든 중요한 일이기에 대강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는 이러하고 절개를 지키는 烈女는 드문 법인데, 윤리도덕대로 행동하기를 원치 않고 또한 일반 대중이 바라는 바도 이와 같다. 타인을 猜忌하여 음해하고 탐욕을 부리는 法도 있는데 그런 행동을 아니하고 경중을 달리하며 대중 앞에서 사모하지 않는 것은 독실한 윤리도덕 때문이다. 고로 세상에는 절개를 지키는 열녀가 있으면 본보기로 旌閭門을 세워 아내의 貞節을 기리고 인생이 살아가는 행동방식을 밝혀두었다. 그래도 부족하면 또 책으로 편술하여 우리에게 전한다.  列聖朝綱倫行實에는 이렇게 모아서 써놓았다. 옛 사람들은 올바른 행적을 진술하는 것을 이와 같이 重히 여겼으니 황차 이렇게 착한 烈女를 보고 어찌 말을 하지 않겠는가. 曺氏는 18세에 시집와서 24세에 남편이 貞疾에 걸려 반년을 極盡히 치료하였으나 결국 돌아가시니 隆熙 己酉(1909年) 겨울이다. 曺氏는 그 후로 음식도 안먹고 슬픔을 억제하고 시부모를 위로한 후 장례를 치른 그날 밤에 男便墓所옆에서 돌로 가슴을 쳐 따라 죽었으니 아! 열녀로다. 지극히 소중한 목숨을 대단치 않게 여기고 어찌 삶을 이렇게 가볍게 하겠는가.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말을 들으니 몸이 솟구칠 노릇이다. 儒林에서 표창장이 수시로 발부되니 대개 表衷所와 같았다. 南成은 아들이 없어 4촌의 아들 萬基로 뒤를 이었다. 딸 하나는 密城 朴道根에게 출가했다.    庚戍(1910年) 봄에 마을 사람들이 비를 세우기로하고 비에 새길 글을 청하니 사양치 못하고 받아들여 敍述하고 비에 새겨 말하기를, 水原白氏는 좋은 봄철을 맞아 種子를 따서 보배를 얻었다. 같이 살다가 다시 같은 무덤으로 돌아온 아내를 맞았다. 먼저 가신 님을 따라 坦坦大路로 영원히 같이 살아 갈지어다. 끝없이 사방으로 엄숙하게 흘러 퍼져 香氣나는 그 이름은 규방에서 정이 깃들 것이다.    그 훌륭함은 사람들에게 지난해 전적으로 아름다웠던 굳센 열행을 열백번이라도 다시 서술하는 것을 도우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朔寧 崔孝習 지음 壬午 一九四二年 12月 日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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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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