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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孺人慶州孝氏行略   석박릉최관증조왕모장손부인년노무치조모당부인유기고불립식수년이강녕차시사지심역이선유능행자야세지논효자매거령부기적이락도지빙리설순단지할고이위지지어심상역근지지신혼정성지제음식충양이성유색종시여일일시위지효이선유능칭지자인지귀이이천상일지어차재고삭령최길묵처유인경주이씨즉백사후손홍영여야성유한정정과소어소희노가심처식빈수십년이미상유차자수원지색구고우구유침고부인봉지적세여일일인칭효부우유계조고강씨년칠십여노망실진평거잠출만주산야중개우지불황녕처불능상시독유인동처이불적사실주야지간각기잠출칙유인불번가중매독추종자부이환일이위상일일야동숙홀우출유인창황출외종지심야혼묵막여기처가근유지수곡거이리강유인신족이행지곡칙과재임애지하수부이환개암중절경무유족적여지도자이적도기처차비성심소자이자호역가이야시칙동방기백가인시오경시지강씨급유인만신유시석지량차수비심이사상상당야사상칙비지성기능여시야유인색양구고급강씨수십년편신지물진심력이봉지경계무위유완지기불위빈지소해개역난의구고선강씨몰언독강씨구시이무치천인수불유지기극자미고강씨수이강의자성양내유양개양친이성시재아신위지근지역이금고실난자야세지소소위령기실재역근저비일조석홀자난원중출래자야아고왈이부인지양조고무양어당부인지양고야   융희 기원후 을해 오월 일   삭령 최효습 근찬         昔博陵崔琯曾祖王母長孫夫人年老無齒祖母唐夫人乳其姑不粒食數年而康寧此是事之甚易而鮮有能行者也世之論孝者每擧靈符奇跡而樂道之冰鯉雪筍斷指割股以爲至至於尋常易近之地晨昏定省之際飮食忠養怡聲愉色終始如一日是爲至孝而鮮有能稱之者人之貴異而賤常一至於此哉故朔寧崔吉黙妻孺人慶州李氏卽白沙後孫洪榮女也性幽閒貞靜寡笑語少喜怒家甚霋食貧數十年而未嘗有嗟咨愁怨之色舅姑又俱有沉痼夫人奉之積歲如一日人稱孝婦又有繼祖姑姜氏年七十餘老妄失眞平居潛出漫走山野衆皆憂之不遑寧處不能常侍獨孺人同處而不適私室晝夜之間覺其潛出則孺人不煩家衆每獨追蹤自負而還日以爲常一日夜同宿忽又出孺人蒼黃出外踵之深夜昏墨莫如其處家近有智水谷距二里强孺人信足而行至谷則果在林厓之下遂負而還盖暗中絶境無由足迹與指導者而的到其處此非誠心所自爾者乎亦可異也時則東方旣白家人始悟驚視之姜氏及孺人滿身有柴石之㾗此雖非甚異事想像當夜事狀則非至誠豈能如是耶儒人色養舅姑及姜氏數十年便身之物盡心力而奉之敬戒無違愉惋之氣不爲貧之所害盖亦難矣舅姑先姜氏沒焉獨姜氏久視而無齒天人雖不乳之旣極滋味故姜氏壽而康意者誠養乃乳養盖養親以誠是在我身爲至近至易而今古實難者也世之所所渭靈奇實在易近底非一朝夕忽自難遠中出來者也我故曰李夫人之養祖姑無讓於唐夫人之養姑也   隆熙 紀元後 乙亥 五月 日   朔寧 崔孝習 謹撰         옛 중국의 博陵사람 崔琯의 증조모 長孫夫人이 나이가 많아 齒牙가 없는지라.   조모 唐夫人이 그 시어머니에게 젖을 주어 粒食을 못 먹은지 수년이었으나 康寧하니, 이 일은 쉬운 듯 하여도 능히 행하는 자 드문 일이다. 세상에서 효를 논한 자 매양 靈妙한 證驗이 있는 神佛의 부적과 奇跡을 들어 얼음 속 잉어와 눈 속의 죽순, 손가락 끊고 다리살 베는 것으로써 지극하다 하오나, 떳떳하고 쉽고 가까운 곳에서 晨昏定省과 飮食忠養과 말을 공손히 하고 顔色을 부드럽게 하기를 평생도록 한결같이 행함이 효도인데, 이를 칭찬하는 이 적도다.    사람들의 異蹟을 높이고 平常을 낮춤이 하나 같이 이에 이르도다. 타계한 삭녕 崔吉黙의 처 유인 慶州李氏는 白沙의 후손 洪榮의 따님이다. 성품이 얌전하고 점잖은 데다 웃음과 말이 적고 기쁨과 성냄이 없었다. 시집와서 집이 너무 가난하여 끼니를 거른지도 수십 년이로되, 일찍이 恨歎하거나 근심하여 원망하는 빛이 없고 시부모가 함께 痼疾에 걸렸어도 부인이 받들기를 여러 해 동안 한결같이 하니 사람들이 모두 효부라 일컫더라. 또한 시할머니 姜氏의 나이 70여세라 老妄으로 失眞하니, 평소에 살면서 점잖게 있다가도 부질없이 산야를 헤죽거리고 달리니 모두가 다 걱정하여 허둥지둥 편할 날이 없었다.    항상 좌우에서 보살피지는 못하나 홀로 유인은 시할머니와 같이 거처하고 자기방에 가지 않았으며, 주야간 남몰래 나가는 것을 알면 유인이 온 집안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매번 혼자 따라가서 스스로업고 돌아오기를 茶飯事로 하였다.    하루는 함께 잠자다가 한밤중에 또 다시 밖으로 나갔기에 유인이 어찌할바를 몰라 蒼黃히 밖에 나가 살피니, 깊은 밤 캄캄하여 어디로 가셨는지 잘 몰랐으나 아무래도 집근처 智水谷으로 갔으리라 짐작되었다. 유인이 발자국을 더듬어 골짜기에 이른즉, 과연 숲속 낭떠러지에 있으므로 곧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개 어두운 絶境에 인도하는 사람 없이 그 곳으로 혼자 가게 된 것은 오로지 誠心없이는 이렇게 될 수가 있었으랴. 또한 奇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때쯤 이미 날이 훤히 밝아서 집안 사람들이 비로소 깜짝 놀라 쳐다보니, 시할머니와 孫婦는 온몸에 가시와 돌에 다친 흔적이 많더라. 이는 비록 異事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당시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지성이 아니고는 참아 능히 이와 같으랴. 부인이 시조모와 시부모를 供養해 온지 수십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지성껏 받들기를 어김이 없었고, 愉惋 기분은 가난을 극복하였으니 대개 이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시부모는 시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시고 시할머니 홀로 中年에 落齒되어 夫人이 비록 젖을 먹이지는 안았으나, 입에 알맞게 음식을 드리니 이에 姜氏 壽康하였다. 생각건대, 誠養은 乳養과 같은 것이니 대개 양친하는데 정성을 다함은 가깝고 쉬운 일이로되, 실행하는 자는 예나 지금이나 실로 어렵도다. 사람들이 이른바 靈奇스런 일은 쉽고 가까운 곳에 있고, 짧은 시간에 문득 難遠中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고로 李夫人의 시할머니 奉養은 唐夫人 養姑에 사양하리오.   乙亥(一九三五年) 五月 日 朔寧 崔孝習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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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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