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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지

○ 故士人朔寧崔孝軓妻江陵金氏烈行碑   개상문천인일리이물연무간피창창재상자천야소소감응자리야리부어인이위성순호성이진실무망자성야인이지성감지칙천기유불응지리호고사인최효범처 증가대부호조참판김석경여야부인유이완예문급귀우최씨복긍세무위대득구고환부자우영독질루세신예부인중심우약범복식지의의약백물공구불핍야칙목욕도진원이신대수기한성서적오육년여도일일지병혁첩규고이진지획양기기년후이천한종부인추흉구족욕하종이작수불입구자사오일이종자지의심자관비인이위명매당기일차오인불식곡지여초오호부인지열행가위순호성이성지소격기능불상철궁창기응첩어부고자호향도금신포거지상비지일이이미몽작설지전가승석재생이남삼녀장수민출위백부후민복자유민여정덕업강갑수손갑용기출후자수민장수민전기행문명어여효자지용심역가경야명왈유효유열여사지칙일편정민 백대지식   도유작구춘 이월 하한   공암 허찬 근찬         蓋嘗聞天人一理而沕然無間彼蒼蒼在上者天也昭昭感應者理也理賦於人而爲性純乎性而眞實無妄者誠也人以至誠感之則天豈有不應之理乎故士人崔孝軓妻 贈嘉大夫戶曹叅判金奭卿女也夫人幼以婉嫕聞及歸于崔氏服矜帨無違大得舅姑歡夫子偶嬰毒疾累歲呻囈夫人中心憂若凡服食之宜醫藥百物供具不乏夜則沐欲禱辰願以身代雖祈寒盛暑積五六年如度一日至病革輒刲股以進之獲良己朞年後而天限終夫人搥胸扣足欲下從而勺水不入口者四五日以從子之義心自寬譬忍以爲命每當忌日且嗚咽不食哭之如初嗚呼夫人之烈行可謂純乎性而誠之所格其能不上撤穹蒼其應捷於桴鼓者乎鄕道襟紳褒擧之狀非止一二而未蒙綽楔之典可勝惜哉生二男三女長壽敏出爲伯父後閔腹子遺敏女鄭德業姜甲秀孫甲龍其出后子壽敏將竪珉鐫其行問銘於余孝子之用心亦可敬也銘曰維孝維烈女士之則一片貞珉 百代之式   屠維作구春 二月 下澣   孔巖 許巑 謹撰

<위치 : 풍정 당산밑 대로변>

  일찍이 대략 들은 바에 의하면, 하늘과 사람에게는 一理가 있으니 아득히 저멀리 계속이어진 푸른 것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이라 하더라, 밝고 밝게 感應을 받은 것은 理致이다. 이치는 사람에게 주어져서 純眞한 性稟이 되었다. 性情과 진실이 망령되지 않으면 정성인 것이다. 사람이 지성으로 감동하면 어찌 하늘이 감응하지 않겠느가. 그러하므로 士人 崔孝軓의 처는 贈嘉善大夫 戶曹叅判 金奭卿의 딸이다. 夫人은 어릴때는 柔順하다고 소문났고 최씨댁에 시집와서는 잘못이 없어 기꺼이 시부모에게 복종하고 恭敬하여 기쁘게 하였다.    부군께서 우연히 독한 병에 걸려 몇 년을 呻吟하자 부인은 마음속에 괴로운 근심이 서려 있었고, 대체로 음식물을 부군에게 복용시킬 때에는 마땅히 모든 醫藥을 제공하는데 모자람이 없었고, 밤이면 목욕하고 하늘에 대신 아프게 하여 달라고 빌기를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을 가릴 것없이 오륙년을 하루 같이 하였다. 어느날 병을 기어코 고치고져 갑자기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진상했더니 많이 좋아졌었다.    年末에 부군이 별세하니 부인은 따라 죽을려고 가슴을 몹시 치고 4,5일을 물 한모금도 먹지지 않았다. 딸린 자식의 情義로 스스로 깨달아 마음을 너그러히 먹고 참으며 命을 보존했다. 또한 제삿날이 되면 처음 喪을 당하여 울었던 것과 같이 울면서 먹지도 않고 哭만 하였다. 부인의 처음 烈行은 純粹하다고 가히 이를만하다. 성정과 誠心을 쏟으니 그 品格이 저 위의 푸른 하늘을 능히 꿰?지 못할건가. 그 감응된 바는 桴鼔가 무색하구나. 고향의 士大夫들이 부인을 표창할 것을 나라에 薦擧하기를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綽楔之典에 오르지 못하여 부인의 행적을 旌閭치 못하였슴이 가히 애석하도다.    2남3녀를 두었는데, 장남 壽敏은 伯父에게로 出系하고 가엾은 遺腹子는 遺敏이다. 딸은 鄭德業. 姜甲秀. 孫甲龍에게로 각각 출가했다. 양자간 아들 壽敏이 옥돌을 깎아 새길 글과 銘을 나에게 물어와서 효자의 마음 씀을 또한 공경하노라.    銘에 이르노니, 열녀에게는 효자가 있는법 정절을 表하는 이 한조각의 빗돌이 百代를 矜式할지어다.    서기 1909년 2월 하순   孔岩 許山贊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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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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